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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KS Apr 05. 2020

[독서 기록]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박준의 <운다고 달라지는 일을 아무것도 없겠지만>을 읽고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은 읽기를 결정하기까지 고민되는 책이었다. 온라인 서점에 처음 표지가 공개되었을 때, 묘하게 눈이 간다는 생각이 들어 구매욕구가 솟긴 했었다. 그런데 매력적인 표지에 쓰여 있는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이란 문구는 출간 당시 내가 받아들이기엔 힘든 문장이었다. 그래서 선택을 포기했었다.


3년여가 흘렀고, 지금 나는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이란 말이 듣고 싶은 상황 속에 있었다. 이 책이 다시 생각난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예상치 못했던 퇴사, 애정을 담뿍 주었기에 그만큼 돌아오는 자책감과 배신감, 상황 속에서 해결점을 찾지 못한다는 무력감. 나는 울고 싶은 한 달을 보냈다. 지금은 그 시기도 지나 울고 싶지만 울어도 되나 고민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럴 때 위로도 분명 도움이 되지만 냉철한 말을 듣는 게 정신 차리는 데에는 더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제목만 봤을 때는 냉철한 문장들이 나올 줄 알았는데, 문장이 예쁘고 따스했다. 원래 이전에 읽었던 박준의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을 먹었다>의 느낌과 겹쳐 보이는 문장도 있었다. 이 책의 오디오북도 소유하고 있는데, 몇 문장은 왠지 그들의 목소리로 들리는 듯했다. 원했던 냉철한 일침은 아니었지만 따스한 문장에서 운다고 해결해주지 않는 내 시간을 치유받는 느낌을 받았다. 가장 큰 위로의 방법 중 하나가 옆에 있어주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은 그렇게 가만히 옆에 머물며 나를 위로해주는 친구 같았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슬픈 지점들이 있었지만, 그 지점 때문에 내가 피로해지는 일이 없었다. 누군가의 슬픔을 같이해주려면, 깊은 감정을 함께해주려면 그만큼의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데 가끔은 그 무게를 짊어지지 못하는 날들이 있다. 현재의 나의 시간들이 그러했는데, 그의 조잘거림은 오히려 내 무게를 물어 날아가는 듯했다. 문장에게 위로받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싶었다. 


어깨의 긴장을 풀고 이 책에 빠져들었을 때 든 첫 번째 생각은 '문장이 예쁘다'는 것이었다. 문맥 없이, 제목 없이 읽으면 평범한 문장이 이 책, 이 글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차지해서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느낌이 들었다.


'배추를 먼저 올려보냈어.'라는 문장도 그렇다. 이 문장 자체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이 읽힌다. 앞에 '해남에서 온 편지'라는 제목을 놓고 


배추는 먼저 올려보냈어.

겨울 지나면 너 한번 내려와라.

내가 줄 것은 없고

만나면 한번 안아줄게.


뒤에 세 문을 두면, 저 자체로 따듯하게 읽힌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보내는 행동으로 읽히게 되는 것이다. 박준의 책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은 계속 이런 식이었고, 나는 계속 따듯하게 위로받았다. 자극적인 것들에 길들여지다가 인생의 순한 맛을 글로 접해서 지금껏 걸어오던 방향과 반대로 몇 걸음 걸어온 느낌이었다. 평양냉면의 슴슴한 맛에 길들면 무섭다는 것처럼, 뜨거운 위로보다 미지근한 위로는 길들고 나니 계속 종이를 넘기게 했다. 






마지막까지 넘기고 나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을 생각해보았다.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부분은 '어떤 말은 죽지 않는다'는 제목의 글이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한 말이, 다시 그와 보지 않는다면 내 유언이 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그리고 절로 내가 만났던 누군가들에게 던진 또는 내민 마지막 말을 떠올려보게 되었다. 나도 예상치 못하게 끊긴 인연들에게는 어떤 말을 마지막으로 하였을까 생각해보게 하였다. 거꾸로 나에게 그들은 마지막으로 무슨 말을 하였던가 꽤 오래 곱씹어보게 하였다.


이제 나는 그들을 만나지 않을 것이고 혹 거리에서 스친다고 하더라도 아마 짧은 눈빛으로 인사 정도를 하며 멀어질 것이다. 그러니 이 말들 역시 그들의 유언이 된 셈이다.


내가 나에게 하는 말도 유언이 된다면, 요즘 나는 참 나쁜 유언만 내게 남긴 것 같다. 자책을 참 많이 했다. 그 말이 마지막으로 기억된다면, 책망하는 말이 내 유언으로 남을 것 아닌가. 내 자신에게 못된 사람이었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여러 힘듦에도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걷는 박준 시인의 글을 읽으며 따스한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스스로에게도 위로를 해주고 싶어졌다. 마음대로 되는 것 없는 인생, 그래도 애써 잘 걸어보겠다고 노력해서 고생했다고. 지금도 힘들고 울고 싶겠지만 운다고 달라지는 건 없으니 그동안처럼 묵묵히 걸어보자고.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이 말은 내가 기억하는 내 마지막 유언이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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