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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KS Apr 21. 2020

[독서 기록] 기괴의 탄생

김금희의 <기괴의 탄생>(제13회 김유정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고


'불륜'이라는 소재를 좋아하지 않는다. 싫어하는 편이다. 단정하지 않는 것은, 자극적이고 재미있다고 생각하면 싫어하는 편이어도 잘 보기 때문이다. 그래도 기형적인 형태의 사랑을 응원할 마음은 없다.


불륜도 사랑의 한 형태일 수도 있다. 그러나 기형적인 사랑임은 분명하다. 법치주의에서 살아온 나의 편협한 생각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불륜은 인정해주고 싶지 않은 사랑이다.


불륜 자체가 한쪽 또는 양쪽이 가족이 있는 상황에서 다른 이와 연인의 정을 나눈다는 것 아닌가. 연인이 있는 상에서 바람을 피우는 것도 싫지만, 불륜이 더 싫은 이유는 최소한 한 가정을 파탄 나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놓고 불륜을 싫어하고, 그 소재로 사람들의 바닥 감정을 끌어내게 하는 것이 가끔은 힘들다.


<기괴의 탄생>은 '불륜은 싫어!'라는 나의 생각이 살짝 뒤틀려 해석된 작품이다. 불륜을 저지른 사람이 피폐해지는 과정이 너무 잘 드러나 있어서다. 


대학생과 교수의 불륜. 게다가 교수는 외부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자신의 사랑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혼을 감행하고 학교도 그만두었다. 알려지지 않은 듯 보였지만 알음알음 거의 모든 제자와 학생들이 알고 있었다. 이게 너무 싫은 <기괴의 탄생> 화자는 그녀와 오랜 인연을 맺은 제자 윤령이었다.


예술대학을 와서 적응 못하는 자신을 끌어준 선생님이 잘못된 길로 가는 걸 보며 윤령은 화를 낸다. 그녀를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러다가 은사에게 실수를 저질렀다. 회사 동료인 리애는 그런 윤령에게 사과하라고 했다.


리애 씨는 내게 사과하라고 권했다. 그대로 두면 미안해지다가, 미안해지다 결국에는 선생님을 미워하게 되리라는 이야기였다.


한참 리애의 조언을 무시하던 윤령은 은파(교수)에게 사과를 한다. 그녀의 그것을 무시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것은 은파의 사랑이었다. 그럼에도 은파는 윤령이 알던 그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말라가는 식물처럼 파리해졌다.


이 모습에서 나도 모르게 은파의 감정에 동화되는 느낌을 받았다. 불륜의 처참한 말로를 보며 슬퍼졌다. 모든 것을 내던진 사랑의 대가가 모든 것을, 하다 못해 자신마저 잃은 모습이라니 슬펐다.


아, 은파가 아닌 윤령에게 동화된 것 같기도 했다. 은사인 은파의 불륜에 치를 떨던 윤령이 그녀에게 사과를 하기까지의 감정선과 일치하는 것 같기도 했다. 윤령과 달리 은파와의 시간이 쌓인 것은 아니지만, 그녀가 슬프게 느껴졌다.


<기괴의 탄생>을 기록하면서 나는 자꾸 양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걷는 느낌을 받는다. 불륜은 싫지만, 작품 속 불륜이 잘 그려지면 인정한다는 것인가. 이런 나는 옳은 것인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불륜의 끝에 피폐해진 은파의 모습이 슬프긴 하지만, 그래도 가족으로 묶인 사람에게 지켜야 할 의리가 있다는 마음에는 변화가 없다. 작품은 작품일 뿐이다.


냉정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누군가에게 상처 입힌 은파-그것도 가족이란 틀을 의리 없음으로 깨어버린 사람-가 이렇게 된 건 그녀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기괴한  사랑의 대가는 크다고 생각하며, 이 기괴한 형태의 사랑이 현실에선 줄어들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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