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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KS Apr 20. 2020

[독서 기록] 운오의 어깨 위로

편혜영의 <호텔 창문>(제13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고



호텔 창문 밖에 서서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인 이 책의 대상 수상작인 <호텔 창문>을 읽었다. 작년에 출간되었을 때부터 관심을 두었지만, 회사를 다닐 때 바쁘다는 핑계로 여차저차 구매를 미루었다. 퇴사를 하고 도서 대출을 할 수 있는 목록에 <호텔 창문>이 올라온 것을 보고 빌려서 이제야 읽기 시작했다.


금박으로 반짝이는 제목을 봤을 때, 표지가 예쁘게 뽑혔다고 생각했다. 띠지 위로 작가들의 이름이 주르륵 나열된 모양이 작게 보면 하나의 건물로 보였고, 반짝이는 제목처럼 호텔 창문에서 바깥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했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여유답지 않은 여유지만, 퇴사와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이 아름다운 책을 읽을 시간이 생겼다.





짐 지워진 죄의식

심사평 중 이런 말이 있다.


수상작 <호텔 창문>은 죄의식이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는 작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죄 없는 죄의식에 대한 치밀한 성찰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호텔 창문>을 요약하기에 이것보다 좋은 말은 없다 생각했다. 누군가의 희생 아닌 희생으로 살아남은 자가 감당해야 하는, 짊어져야 하는 무게를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옛 드라마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가 생각났다. 여자 주인공 대신 물건을 찾기 위해 물속으로 뛰어들어 생을 마감한 오빠를 대신하여 여자 주인공은 오빠의 삶을 사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죄의식을 갖게 된 주인공들은 보통 이렇게 살려고 했다. 자신이 죽음으로 내몬 사람의 생을 다시 살아내는 방식으로.


이런 주인공들과 <호텔 창문>의 주인공 운오다른 점이 있다면 는 그렇게 살 마음이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마음일 뿐 아들을 잃은 부모의 마음은 달랐고, 그사이의 갈등이 이 작품에 서술되어 있다.

 

큰어머니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놓치지 않고 말했다. 너는 복이 참 많구나. 운오가 형의 나이를 넘겼을 때, 인턴으로 입사했을 때, 다행히 정규직이 되었을 때도 그렇게 말했다.


나쁜 짓을 많이 한 아이라도 생때같은 자식이었던 형을 잃은 큰어머니는 상심이 컸을 것이다. 그 상실감은 운오에게로 왔다. 운오가 형의 삶을 대신 사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운오는 죄의식을 강요당했다. 제사상에 올라가야 하는 제물 취급을 받았다.


그 마음이 어떨까 생각해봤지만, 쉬이 예측되지 않았다. 운오의 삶에 비한다면 나는 사랑만 받고 자란 사람이다. 따뜻한 가족이 있고, 누군가 우리 집의 상황을 내 탓으로 돌리는 사람도 없었다. 있었더라도 그게 내 귀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사람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운오의 유년기는 힘들고 차갑게 느껴졌다.


운오가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부분은 많지 않지만, 책의 담담한 어투가 오히려 운오의 감정을 잘 드러내고 있는 듯했다. 이미 지쳐버린 듯한 운오의 감정을 누군가 담담히 그려주는 듯했다. 너무 많이 화가 나면 화를 낼 여력도 없는 것처럼, 운오는 더 이상 무엇을 표출할 여력도 없어 보였다.


사촌 형의 기일을 처음으로 참석하지 않는 운오를 보면서 환희만이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아는  나의 가족들 생각도 났다. 그다음 해가 더 곤욕스러울 수도 있겠다 싶었다. 벗어나려고 하지만 나 대신 제물이 될 나의 아버지가 힘들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현실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던 것이다. 작품 속에서라도 그런 내일이 운오에겐 찾아오지 않길 바란다.

 

억지로 짊어진 죄의식을 끌어안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무기력해질 수 있는지 <호텔 창문>은 이야기한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돌려서는 안 되는 미움을 돌리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여준다. 무엇이 옳다 아니다 할 수는 없겠지만 억지로 짊어진 돌을 어깨에 올리고 사는 운오에게 어른들이 조금이나마 아량을 베풀어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미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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