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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KS Apr 18. 2020

[독서기록] 오랜 고민을 떠올린다

김혜진의 <3구역, 1구역>(소설보다 봄 2020)을 읽고





몇 년 전 구병모 작가의 <네 이웃의 식탁>을 유심히 읽었던 날이 있었다. 그때부터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온 작년 11월까지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집이었다. 나의 자취는 매우 특이한 상태였다. 오래된 외갓집에 혼자 살고 있었다. 처음 그곳에 살기로 했던 7년 전부터 그곳은 재개발 논의가 있었고, 외가 식구들은 시골로 귀농한 지 10여 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집은 외가의 집인 듯 아닌 듯 놓여만 있었고, 그곳에서 내가 7년이나 머물렀다. 나는 세입자인 듯 가족인 듯 그곳에 머물렀다. 내 집인 듯 내 집 아는 느낌이 강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나보다 연배가 훨씬 높으신 '집'님께서 심심하면 어디 하나가 고장이어서 그걸 고치느라 애를 먹어야 했다는 것이다. 지금 지어진 건물처럼 국제규격 같은 것들이 통하는 집이 아니었다. 집을 고치는 데에 선수인 아빠가 주기적으로 와서 손을 보내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였고, 아빠가 오지 못할 때는 전문가를 불러왔는데도 이해를 못할 집이라고 했을 정도였다. 내가 사는 동안 보일러에 연결된 호스가 삭아서 물이 새기도 했었고, 화장실에서 물이 새기도 했었고, 보일러에서 가스가 새기도 했었고, 가스레인지에 불이 붙지 않아 5분씩 불을 켜고 있기도 했다. 콘센트 집을 누르고 전선을 빼서 전기선이 벽에서 탈출하기도 했고, 화장실 문이 닫힐 때마다 나무가 결대로 찢기기도 했다. 그곳에서 살면서 나는 다음에 꼭 새집, 새로 지어진 집으로 가고 싶었고, 이사할 때 그 해 지어진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3구역, 1구역>은 이런 나의 옛 집이 생각나게 하는 소설이었다. 재개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고양이가 나왔다. 옛날 옛적에 고장 난 센서등 덕에 1층인 옛 집 앞에는 추운 겨울 고양이들의 쉼터가 되곤 했다. 며칠 집을 비운 날이거나 퇴근이 늦은 날이면, 우리 집 앞에서 쉬고 있는 고양이의 반짝이는 눈 덕에 놀라서 내 집을 못 들어가고 바깥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던 적도 있었다.


태비를 통해 나와 너가 만나게 되는 것, 재개발지에서 쫓겨나는 사람들 걱정은 하지 않으면서 길고양이들 걱정을 하는 너를 보며 그때 마주쳤던 고양이의 눈이 생각났다. 그 주변도 재개발이 급속도로 이루어지면서 우리 집 앞으로 흘러들어오게 된 것이겠지 싶은 생각이었다. 


그리고 작품 속 '나'의 생각에 동감했다. 길고양이를 걱정하면서도 3구역 거주민들이 빨리 나갔으면 하고 생각하는 너의 생각에 실망하는 모습에 함께 끄덕였다. 여러 집을 보여주었지만, 나에 대한 배려로 3구역의 쉼터를 보여주지 않은 너의 모습에 실망하는 모습에도 동감이 되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너에게 이끌리는 나의 모습은 사실 이해되지 않았다. 만약 소설 속 '나'가 나라면 자존심이 상해 너와 만나는 것 자체에 스트레스를 느낄 것 같다. 이유 없는 이끌림보다는 이유 없는 불쾌함이 더 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차이는 텍스트로만 너를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3구역, 1구역>은 오랫동안 담아왔던 고민을 생각나게 하는 작품이었고,  나에 대한 공감과 나에 대한 비공감이 공존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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