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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KS Jun 08. 2020

[독서 기록] 오늘도 한잔할 사람의 이야기

-미깡의 <나라 잃은 백성처럼 술을 마신 다음 날에는>을 읽고

1. 내용에 관하여
음주가 가능한 성질이 유전되는 것처럼, 음주를 받아들이는 태도도 유전된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가족들이 반주를 즐기는 분위기고 술을 마시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면, 성인이 되고 처음 받아들이는 술이 생각보다 괜찮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랬다. 부모님은 좋은 음식이 생기면 한 잔 술을 곁들였고, 축하할 일이 생겨도 술을 곁들였다. 그렇다고 주사들이 없으셨던 건 아니라 나는 어른이 되면 이렇게 마시지 말아야지 했다. 하지만, 다 크고 보니 나도 부모님처럼 술을 자주 마시고 자주 취하는 사람이 되었다.

술을 끊겠다는 이야기는 20대 초반이 아니고 해본 적이 없다. 어차피 지키지 못할 약속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되도록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음주 생활을 하자고 마음먹었다. 지속 가능한 음주 생활에는 곁들여먹는 음식과 해장 음식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나라 잃은 백성처럼 마신 다음 날에는>을 선택한 이유는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해장 음식은 다양했다. 음료, 약, 해장국, 만두까지. 몇 가지 추천 음식에는 상호와 이름까지 모두 있어서 이걸 보고 골라서 해장을 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아무튼 술>의 후속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당 책의 저자인 김혼비 작가가 추천사를 써준 것도 이런 느낌이 들게 하는 데에 한몫했다.


2. 형식에 관하여
'띵 시리즈'는 세미콜론의 음식 관련 에세이 시리즈집이다. 그런데 책의 판형과 구성을 볼 때면, '아무튼 시리즈'가 생각난다. 들고 다니기 좋은 가벼운 무게, 제목만 짝수 페이지에 적고 본문은 홀수 페이지에서 시작하는 것, 작가 특유의 것을 주요 소재로 잡았다는 것, 이 세 가지가 닮아 보였다.   제목의 구성이나 표지 이미지는 차이가 있지만, 유사한 포맷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아쉬웠다. 좋아하는 형식이 이렇게 복제되어 퍼지는 것이 좋은 현상인지 단번에 파악되지 않는다.

이 부분은 책의 내용과는 관련이 없다. 나는 <나라 잃은 백성처럼 마신 다음 날에는>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고, 시리즈 중 몇 권을 더 볼 마음도 든다. 그런데 작은 출판사 연합에서 시작한 것이 대형 출판사의 유행으로 번지는 것엔 약간 거리끼는 마음이 든다. 잘 알려지지 않은 저자에게서 시작되었다는 메일링 구독 서비스가 대형 출판사로 옮겨 가면서 그들의 파이가 줄어들고 있다는 이슈가 있었다. 이 부분도 그렇게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서점에 가봐도 유사하다. 소위 '잘 나가는 스타일'이 생기면, 복제본과 같은 책들이 많이 나온다. 그게 유행이 된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이해하지만 아쉬운 부분이 있다. 그래서 오히려 독립출판으로 나온 책들이나 1인출판사 등의 소형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이 더 다채롭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3. 추천 이유
그럼에도, 에세이가 가벼워지고 있는 건 좋다. 사진을 빼고 글만 집약하니 물리적으로 가벼워졌다. 물리적 가벼움은 에세이를 집어들기 더 쉽게 만들었다. 그리고 글에 집중함으로, 조금 더 확 와닿게 하는 것 같다. 몇 장으로 심도 깊은 위로를 빠르게 받을 수 있다는 게 에세이의 장점 같다.

<나라를 잃은 백성처럼 마신 다음 날에는>을 읽고는 음주를 즐기는 사람도 괜찮다는 작고 가벼운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술, 해장처럼 마이너한 소재의 글로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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