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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룰루 Jan 01. 2020

겁내지 않고 나아갈 용기 ①

남편은 매일 새벽 3시에 퇴근했다.      

그리고 아침 7시면 축 처진 뒷모습을 하고는 다시 회사로 떠났다.           


밤 10시에 퇴근하는 나를 보며 부럽다는 남편에게 화를 낼 수도, 타박을 할 수도 없는 날들이었다. 같이 있기 위해 결혼을 했는데 어쩌다 우리는 결혼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부부싸움을 할 시간조차 없이 살고 있는 걸까. 너의 잘못도, 나의 잘못도 아닌데 왜 나는 너에게 화가 나는 걸까. 마음 속에 많은 질문들이 쌓였지만 어디에도 답은 보이지 않았다.        

   

2018년 숨이 막히게 더웠던 여름날, 그때의 우리였다. 

      

나는 도망치기로 했다. 이 덥고 외로운 곳에서 남편의 손을 잡고 저 먼 곳으로 떠나야겠다고 다짐했다. 회사에서 유학비용을 지원해주는 국내 석사과정 1년과 해외 석사과정 1년 프로그램에 겁도 없이 손을 들었다. 내가 유학을 가면 남편은 동반휴직을 하게 될 테고, 그러면 우리가 꿈꾸던 그런 신혼 생활을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이 긴 여정의 시작이었다. 더운 여름날 선풍기 3대를 틀어놓고 오랜만에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영어공부를 하다 보니 남편이 오지 않는 기나긴 밤이 아주 외롭지는 않았다. 

          

그렇게 여름을 보내고, 바람이 조금 차지던 날이었다. 유학시험은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여름내 고생한 남편이 조금 한가해진 틈을 타서 방콕으로 늦은 휴가를 계획했다. 여행 가기 전 날 아침, 분명 생리할 때가 되었는데 소식이 없었다. 방콕에서 마음 놓고 맥주를 마시려면 뭐든 확실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임신테스트기를 했다.      


빨간 줄이 하나.      


그럼 그렇지 임신이 뭐 그렇게 쉬운가.           

별생각 없이 머리를 감고 임신테스트기를 버리려고 집어 들었는데     


빨간 줄이... 두 줄?     


내 눈이 잘못된 건가? 시간이 지나서 오류가 생긴 건가?          


남편을 깨웠다.           


“일어나 봐. 이거 좀 이상해”          


남편은 비몽사몽 임신테스트기를 보더니 눈이 동그래진다.       


“두 줄이 임신이야? 헐 대박 축하해!”          


어... 그래 남편으로서 합격점의 반응이기는 한데 정말 축하할 일인가?     

당장 내일 방콕 여행을 가야 하고, 유학시험도 앞두고 있고, 남편은 일하느라 집에도 못 들어오는 이 시점에? 

아니, 임신이 맞기는 맞는 건가?     


혼란스러운 아침이었다.           


출근길에 임신테스트기를 두 개 더 사서 가방에 넣고 출근을 했다. 점심시간에 화장실에 가서 다시 임신테스트기를 해보니 역시나 빨간 줄이 두 줄.      


머릿속이 하얘졌다. 일단 뭘 해야 하나. 당장 내일 여행은 어쩌고, 유학시험은 봐야 하는 건가.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부부싸움도 할 시간이 없는데 우리가 지금 뭘 만든 거야 대체.      


그렇게 우리에게 아기가 찾아왔다.           


임신테스트 두 줄을 확인하고, 일단 방콕행 비행기에 올랐다. 4박 5일 동안 남편과 아주 신나게 놀았다. 아기가 잘못될까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사실 그때는 아기가 생겼다는 것조차 실감 나지 않았다.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날 병원을 찾았다. 임신 5주라며 초음파에 보이는 아주 작은 점이 우리 아기라고 했다. 심장소리도 들리지 않는 아주 작은 점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나는 영어시험을 봤다. 새벽 6시에 일어나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고, 잠도 덜 깬 채 시험장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다. 입덧이 막 시작된 줄도 모르고 잠을 못 자서 울렁거리는 줄 알았던 빈속을 붙잡았다. 아기가 뱃속에 있다는데 커피를 마실 수도 없어서 몰려오는 졸음과 사투를 벌이며 4시간가량 꾸역꾸역 시험을 봤다.           


시험 보는 내내 너무 힘들었지만 그래도 시험에서 불합격했을 때 ‘떨어지면 임신해서 그런 거라고 하면 되겠다.’라는 생각에 비겁하게 조금 안도했다. 영어시험이 끝나고 큰 기대 없이 평소처럼 회사를 다녔다. 누가 합격시켜 준 것도 아닌데 ‘합격하면 아기를 데리고 유학을 어떻게 가지’ 걱정을 하다가, ‘불합격하면 육아휴직을 쓰고 아기를 키워야겠다.’ 자기 위로를 하다가 싱숭생숭한 마음이었다. 그 사이 아기는 쑥쑥 건강하게 자랐다.         

임신 10주. 회사에서 영어시험에 통과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대학원 면접은 3주 뒤인 임신 13주. 일단 인터넷에서 임신 13주 배 크기부터 찾았다.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불합격했던 선배 언니의 이야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면접관들에게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배가 티 나게 나오는 시기는 아니었지만 면접용 정장을 소화하기에는 몸이 너무 부어있었다. 면접 준비보다 면접복장 준비에 더 치중하면서 온 집안의 정장을 다 입어보았다.          


아기는 팔다리가 생기고 작은 사람의 형체를 띠기 시작했다. 초음파로 보지 않으면 뱃속에 있는지 없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배로 지방이 모이는 걸 보니 임신을 하기는 했는가 보다 싶었다. 몸조심해야 한다는 임신 초기를 회사에서 퇴근하면 영어면접을 위해 대본을 쓰고, 외우고 연습하면서 보냈다.           


대학원 면접이 있던 날 최대한 배를 가려주는 원피스 정장을 입고 면접관들을 만났다. 영어 말하기에 자신이 없던 나였기에 엄청 긴장했지만 준비한 만큼 시험을 보고 나와 완전 녹초가 되어 쓰러졌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아기는 내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최종 합격 발표가 날 때까지 마음은 아주 뒤죽박죽이었다. 처음 시작은 남편과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아기가 생기면서 처음 생각했던 그런 외국생활과 전혀 다른 모습이 펼쳐지리란 생각에 앞이 까마득했다. 여름방학 때 여기저기 여행도 다니고, 학기 중에도 외국 친구들과의 화려한 캠퍼스 생활을 꿈꾸고 있었는데 아기가 생기면 여행이나 캠퍼스 라이프는 둘째치고 공부는 할 수 있을까?     


주위의 아기 엄마들을 보면 아기 키우느라 집 밖으로도 못 나간다는데 나는 합격을 하게 되면 우리나라 대학원에서 만삭까지 봄 학기를 다니고, 여름방학에 아기를 낳고, 가을학기에 아기를 키우면서 학교를 다니다가 12월에 태어난 지 7~8개월 된 아기와 함께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야 했다. 과연 가능한 일일까. 합격을 한다고 해도 정말 우리가 행복해지는 길일까. 수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사실 누가 들으면 아직 합격한 것도 아닌데 배부른 소리라고 할 수도 있지만, 합격 발표를 마냥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만 기다릴 수는 없었다.           


그리고 임신 17주.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 좋아해야 하는 일인데 걱정이 먼저 앞섰다. 임신도 대학원도 외국생활도 모두 처음인데 동시에 낯선 변화들을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만 가득한 합격 발표였다.           


그런 나에게 겁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준 건 남편이었다.           


“아기 태어나고 외국 유학 가면 아기가 자라는 모습을 다 볼 수 있겠다. 너무 행복하다.”          


회사를 계속 다닌다면 아기가 잠들고 난 후에 퇴근하고, 아기가 깨기도 전에 출근을 해야 해서 아기가 처음 기는 모습, 걷는 모습, 말하는 모습 아무것도 볼 수 없을 거라고. 육아휴직을 하고 외국에 같이 살면 아기의 모든 순간을 같이 할 수 있어 행복할 것 같다고 환하게 웃어주는 남편. 외국에 나가서 종일 아빠와 함께 있다 보면 엄마보다 아빠라는 말을 먼저 할 거라며, 아기의 걷는 모습을 나보다 먼저 볼 수 있을 거라고 좋아하는 남편을 보니 모든 걱정이 사라졌다.           


둘이었기에 겁내지 않고 나아갈 용기를 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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