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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룰루 Jan 08. 2020

겁내지 않고 나아갈 용기 ②

아이를 갖는 것도 유학을 가는 것도 모두 하고 싶은 것들이었지만, 이렇게 동시에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얼떨결에 두 가지를 동시에 하게 되면서 우리 부부는 하나씩 하기에도 벅찬 인생의 과제들을 한꺼번에 처리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했다. 처음에는 아주 머리가 아팠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될 대로 되라는 배짱 가득한 마음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은 점은 유학이 확정되면서 나는 계획했던 출산휴가 보다 조금 더 일찍 휴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육아휴직이 아닌 유학휴직으로 처리되면서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경력에 공백이 없는 욕심 많은 커리어우먼이 되어있었다. (실제 인사부서에서는 내가 임신한 사실을 잘 모르는 바람에 출산 선물도 못 받았다.) 여자 후배들이 본인도 나처럼 유학과 출산을 동시에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할 때마다 어깨가 무거웠다. 둘 다 제대로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나의 걱정은 잠시 뒤로 미뤄야 했다.      


육아휴직을 하고 나와 함께 외국으로 나기로 한 남편은 파격적인 '라떼파파'가 되었다. 남편은 아주 바쁘지만 인정받는 부서에 있었고, 사회가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돌도 안 된 아이를 양가 부모님의 도움 없이 키우기 위해 휴직하는 남자는 흔하지 않았다. 남성 육아휴직이 많이 늘었다고는 하나 보통 엄마의 육아휴직 기간이 끝난 후 아빠가 육아를 담당하는 경우는 있어도 아이 때부터 아빠가 육아를 전담하는 경우는 주위에서 찾기 어려웠다.       

우리 둘이 저지르고 결정한 일이었지만 아무리 둘이 노력을 한다하더라도 주위의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당장 아이를 낳고 우리나라에서 석사과정을 마저 마쳐야 했기 때문에 양가 부모님들께 아이를 봐달라고 부탁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이도 유학도 우리 둘이 다 저질러 놓고 일단 통보를 하면서 부모님들께서 뭐라고 하실까.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도 버거운데 대학원을, 그것도 이억 만 리 바다 건너로 떠나겠다고 하니, 이 대책없는 부부가 얼마나 철없이 보일까. 뿐만 아니라 주위에서 부모님들이 아빠의 육아휴직에 가장 거부감을 가진다는 이야기도 들었던 지라 지레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도 양가 부모님 모두 진심으로 축하해주시고 지지해주셨다. 우리나라에서 학교를 마저 다녀야 하는 시기에 양가 어머님들께서 기꺼이 아이를 봐주시겠다고 나서주셨다. 유학을 나가는 것도 더 넓은 세상에서 공부할 기회라며 아주 좋은 일이라고 축하해주셨다.      


그리고 나의 유학을 지원해준 회사와 남편의 육아휴직을 승인해준 남편회사. 6년 동안의 회사생활 중에 지금이 가장 애사심 넘치는 순간이다. 어차피 출산휴가 들어갈 텐데 유학을 왜 가냐고 했더라면 주어지지 않았을 기회였다. 남자가 무슨 애를 보냐며 육아휴직이 승인되지 않았다면 세 가족의 미국행은 무산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엄마 때문에 머나먼 길을 나서야 하는 작은 나의 아들. 혼자가 아닌 길이기에 더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를 낳기 전엔 ‘아이들은 적응력이 어른보다 뛰어나다고 하니 아이는 괜찮을 거야’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는데 자라나는 아이를 보니 나 때문에 괜히 겪지 않아도 될 변화를 겪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든다. 우리에겐 평범한 일상 속 작은 것들 하나하나도 이 아이에게는 새롭고 놀라움의 연속인데 이 곳의 삶이 익숙해지기도 전에 완전히 새로운 곳으로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그저 미안하고 고마울 뿐이다.      


나의 노력으로 만들어낸 결과라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면 혼자서는 절대 시작할 수 없는 길이었다.   

  

혼자서는 시작조차 할 수 없는 길이기에 더 든든하기도 하고, 더 부담스럽기도 하다. 전폭적으로 지지해주는 남편과 부모님들 덕분에 겁 없이 도전하고 앞으로 나갈 수 있어 세상 무엇보다 든든하기도 하지만, 내가 더 열심히 공부하고 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부담도 함께 밀려온다. 이렇게 힘들게 떠나는데 누구보다 더 크고 많은 것을 얻어 와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일종의 죄책감과 부담감이 함께 몰려오곤 한다. 하지만, 앞으로의 1년은 무사히 잘 마치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하는 시간들이 될 것이다.      


육아 SOS를 청할 양가 부모님도 계시지 않고, 미국 의료비는 턱없이 높고, 외국인들과 부대끼며 헤쳐 나가야 하는 나의 학교생활과 난생 처음으로 일을 하지 않는 남편의 육아생활까지. 생각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 난관들뿐이다.     


가끔 혼자 유학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면 지금보다 더 홀가분하고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수업 끝나고 마음 편히 술도 한잔하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수업을 듣고, 방학이면 이곳저곳 놀러갈 계획을 세우지 않았을까.      


그래도 후회하거나 뒤돌아보는 건 내 성격과 잘 맞지 않으니, 일단 앞으로 가보기로 한다. 예상치도 못하게 함께 떠나게 되었으니 예상치도 못할 즐거움과 기쁨을 찾을 수 있겠지. 물론 예상치 못한 고난과 어려움도.      


혼자가 아닌 길이기에 더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함께 가는 길이기에 두려워도 용기내서 나아갈 수 있다. 

메두사처럼(응?) 세 가족이 항상 붙어 다니기로 약속했기에 어떻게든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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