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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란 Mar 27. 2022

나는 그들의 꿈을 빼앗았으니,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김민채의 아빠, 나희도의 남편은 누구인가. 이제 일주일만 지나면 그 비밀이 풀리고, 지금 나의 최애 드라마도 끝이 나겠지.

오늘 15화에서 고유림이 술 취한 아빠에게 노래를 시키는 장면이 나왔다. 노래해보라는 대사가 나왔을 때, 이미 알았다. 아빠가 엄청 노래를 잘할 것이라는 게.


아빠의 젊은 시절을 본 적이 있다. 책장 속 오래된 책 속에, 아빠가 밑줄 그어놓은 흔적과 감상을 적어둔 부분이 있었다. 갑자기 심장이 쿵, 떨어지면서 그 장면이 오래 슬프게 기억될 거라고 짐작했다. 대부분의 딸이 그렇듯, 사춘기 이후 아빠와 데면데면했었는데 그 순간 이후 나는 아빠를 모두 이해하고 전보다 몇 배 더 사랑하게 됐다.

나는 누군가의 꿈을 먹으며 자라온 셈이었다. 나를 키우기 위해, 가장으로 살기 위해 몇 번은 포기했을 꿈들. 그게 어렴풋이 보였다. 누군가의 꿈을 버린 대가로 살아온 나는 그의 또다른 꿈이 되었겠으나, 그조차도 그의 마음대로 되지는 않았을 거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를 보며 꾸는 그의 꿈이 이뤄지기 어려울 거란 걸 깨달은 그때, 나는 많이 슬펐다.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슬프다.


그때의 마음이 드라마의 그 장면을 보며 떠올랐다.

희도와 이진의 첫키스 같은 두 번째 키스 장면보다 그 장면이 드라마가 끝나고도 더 마음에 남았다.


엄마에게 갖고 있던 오해들은, 엄마가 나의 엄마가 된 나이를 내가 지나기 시작하며 모두 풀렸다. 엄마가 나의 엄마가 된 나이를 내가 지나보니, 그건 아직 어린 나이였다. 아직 누구에게나 예쁠 나이고, 많이 꿈꾸고 무언가를 도전하고 시작해도 될 나이였다. 


요즘,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며 사는 분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다. 나는 이런 사람들이 멋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리고 나도 그렇게 살고 싶고 내 남편도 그렇게 살길 바라는데, 정작 이런 내가 되기까지는 누군가의 꿈을,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빼앗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어째. 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잘해야지. 그러고 보니, 나는 요즘 더 잘하고 말겠다는 각오를 많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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