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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란 Feb 15. 2022

올빼미 특공대의 밤

우리가 모르는 그들만의 시간

지난주 토요일 저녁 시간을 앞두고 남편과 나는 분주했다. 보온병에 따뜻한 보리차를 담고 비상시를 대비해 초콜릿도 챙겼다. 전날 산 랜턴도 잊지 않았다. 오랜만에 맑은 날이라, 춥지는 않았지만 옷도 조금 껴입었다. 우리는 밤의 숲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메트로 밴쿠버 국립공원 프로그램 중 하나인 'Owls Walk'를 체험하기로 되어 있었다. 해가 진 후, 국립공원을 걸으며 올빼미나 부엉이의 소리를 듣는 거였다. 남편과 나는 이 프로그램에 참가 신청을 한 몇 주 전부터 이 계획에 잔뜩 신나했다. 원래 명칭은 재미없으니, 우리끼리는 '올빼미 특공대의 날'이라고 이름까지 붙여둔 터였다. 


프로그램에 신청한 사람은 우리까지 스물다섯 명 정도였다. 두 명의 가이드 지시에 따라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나와 남편은 선발 그룹! 우리 쪽에는 아빠를 따라온 꼬마도 있었고, 나이가 지긋하신 분도 있었다. 꽤 다양한 연령층이었다. 우리처럼 커플로 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혼자 참석한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곧 밤의 숲에 접어들었다. 

숲의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달이 또렸해졌고 별이 쏟아졌다. 이것저것 말해주던 가이드의 목소리도, 소근소근거리던 사람들의 목소리도 점점 줄어들었다. 반환점인 호수 근처에 도착했을 땐 모두가 숨을 죽였다. 길을 비추던 랜턴도 꼭 필요할 때 외엔 다 꺼두었다.

그러자 밤의 숲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저 너머의 숲에서 부엉이와 올빼미가 울었다. 호수에서는 비버가 첨벙거리며 헤엄쳤고, 수달도 움직였다. 수많은 다른 새들의 목소리도 들렸다.

인간이 활동을 멈춘 시간, 인기척을 내지 않는 곳에서 저들은 이토록 다채롭게 활기를 띠고 있었다. 별똥별까지 떨어지는 완벽한 순간이었다. (정작 나는 비버에 집중하느라 별똥별을 보지 못해 아쉽다고 발을 굴렀지만.) 모두가 한참을 그렇게 호수 근처에서 머물렀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고, 그들을 방해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한다고 해서 그들의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닿지 않는 곳에 더 많은 더 찬란한 세계가 있다. 궁금하고 알고 싶어도 가능한 한 조용히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저 보기만 해야 하는 곳. 그 세상엔 우리의 소음이 끼어들 틈이란 없다. 우리의 목소리도, 시선도, 이기도 그 아무것도 존재해서는 안 되는 곳이다. 그들은 저마다 자신의 고요와 평화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으니까.


이제 올빼미 특공대의 하루가 끝날 때였다. 그새 더 밤은 깊어졌고 우리는 앞사람, 뒷사람의 발걸음에 랜턴을 비춰주며 조심조심 숲의 입구로 돌아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걸음을 주시했고 안전을 염려하며 손을 내밀었다. "이 정도는 문제 없어!"라던 캐나다 할머니도 잠시 내 손을 빌려 바위를 넘었다. 오늘 처음 만난 사이였고, 이 길이 끝나면 인사도 없이 저마다의 집으로 돌아가겠지만 그 순간만은 함께 있었다. 이상한 유대였다. 그럼에도 근사했다. 마치 우리가 정말로 밤의 올빼미가 된 것 같았다.



* 타이틀의 사진은 구글에서 다운받은 프리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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