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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란 May 26. 2022

나의 사랑하는 고양이에게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은 2010년 6월 1일이야. 나는 경기도 이천까지 가서 널 데려왔어. 그때 내가 백수였던 바람에 돈이 좀 없었거든. 버스를 타고 가서 버스를 타고 올 요량이었는데, 네가 너무 야옹을 우렁차게 해서 버스 기사님이 안 태워줬어. 덕분에 없는 돈 끌어모아 택시를 탔지.

'까망이'라는 이름이었던 너에게 '롤리팝'이라는 이름을 지었어. 누가 봐도 하얀 고양이였던 네가 '까망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것은 네 머리에 있던 하트모양의 검은 머리 때문이었겠지. 그게 내 눈에는 한없이 달콤한 사탕 무늬 같았고, 그래서 그때부터 넌 나의 '롤리팝'이 되었어. 그 검은 머리는 네가 두 살이 되었을 무렵 다 사라졌으니, 계속 까망이였다면 얼마나 억울할 일이야.

우리의 첫 시작은 서교동 반지하 방이었어. 누군가 밖에서 창문을 열었고 네가 그곳으로 나갔다가 현관문을 찾아왔지. 기적 같은 일이었어. 그 일 이후 거의 바로 우리는 그곳을 나와 합정동으로 이사를 갔던 것 같아. 특이한 베란다 구조를 가진 그 곳에서 너는 베란다 여기저기에 숨길 좋아했지. 세탁기 뒤에 숨어 있어서 거기는 안 된다고 혼낸 기억도 있어. 그곳에서 2년여를 살았나? 그 다음엔 창천동으로 갔어. 집이 많이 좁아졌었기 때문에, 그때를 회상하면 너와 온이가 많이 답답했을 거란 생각이 들어. 거기서 살다가 내가 형아를 만났지. 당황스러웠을 거야. 갑자기 사람 형아가 생겼으니까. 그래서인지 넌 형한테 곁을 잘 주지 않았어. 1년 넘게 걸렸던 것 같아. 그렇지? 고양이시 행신동에서도 많이 즐거웠지. 나 외의 모든 사람을 경계하던 네가 사람에게 점점 마음을 열었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어. 그러다가 문득 우리가 캐나다로 왔어. 그 여정을 생각하면 네가 얼마나 용감한 고양이였는지, 나는 다시 한번 감탄해.

한국에서 캐나다의 몬트리올로, 다시 밴쿠버로. 우리는 꽉 채운 12년 동안 되게 많은 모험을 했지. 지금 네가 떠난 곳에도 분명 모험의 거리가 가득할 거라 믿어.


그곳에는 츄르 강이 흐를 거야.

팝아, 너는 지금쯤 무지개다리 입구에 줄을 서 있겠지.

무지개다리 입구에는 고양이 신의 대리인이 있어. 

네 이름과 너의 누나였던 내 이름을 대면, 네가 나로 인해 억지로 잃어버린 땅콩을 내어줄 거야.

두 번 다시는 누구도 너의 땅콩을 뗄 수 없게 잘 간직하도록 해.

그곳에는 캣닢 숲이 있을 거야. 

마음껏 뒹굴어도 될 만큼 끝도 없이 펼쳐져 있을 거야.

누나가 너의 모험 가방에 수많은 츄르와 이빨과자를 넣어둘 테니, 마음에 드는 친구가 생겼다면 "츄르 한 봉지 하고 갈래?" 하고 물어봐. 인간 사회에선 꽤 올드한 작업법이지만, 누가 알아, 고양이 세계에서는 통할지.

너는 쎈 척하지만 겁이 많고 낯도 많이 가리잖아.

그중 대빵인 것 같은 애를 보면 츄르로 회유해서 친구가 되도록 해.

너의 (좀 찐따 같은) 성격에 도움이 될지도 몰라.

너 이빨 몇 개 없어서 친구들이 놀릴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어딘가에 사는 이빨요정을 찾아가 봐.

그 요정이 너의 이빨을 돌려줄지도 몰라.

누나가 큰돈 쓰고 네 이빨 보관해둔 거니까, 안 돌려준다고 하면 고소해. 백 퍼 네가 이겨.

그렇게 즐겁게 지내다 보면, 언젠가 리온이가 갈 거야.

그땐 싸우지 좀 마.

다시 만났을 때도 싸우고 있으면 니네 아주 혼꾸녕 날 줄 알아.

형아랑 누나는 오늘 너를 여행 보내면서, 앞으로 더 즐겁기로 했어.

네가 너무 일찍 떠난 게 배 아플 만큼 즐거울 예정이야.

네 멋대로 일찍 떠난 여행이니, 이쯤은 감수하기를 바라.

온이는 아주아주 늦게 보낼 거야. 

나중에 만나면 우리가 얼마나 즐거웠는지, 얼마나 행복했는지 듣고 배 아플 준비나 하라고!

내 사랑 롤리팝. 내 사랑 팝아.

사랑해. 네가 내 우주가 되어주었어. 

고마워.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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