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서예 시간이다. 선생님 앞에 만 가면 긴장이 된다. 잘 쓰고 싶어서다. 그런데 선생님은 붓을 가지고 잘 놀아야 한다고 하신다. 오늘은 팔꿈치를 안과 밖으로 선을 틀어서 표현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것을 동그라미로도 표현하였다. 폼생 폼사이고 어떤 것이든지 자세가 중요하다. 선생님의 설명을 쫓아가다 보면 또 긴장이 찾아온다.
선생님이 붓을 잡고 시범을 보여주셨다. "붓을 세워보세요. 이 붓은 세우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선을 그을 수가 있답니다. 오늘은 선을 여러 방향으로로 바꾸는 방법을 배우고 연습해 볼게요."
신기했다. 나는 붓은 글씨를 주로 쓰는 방향만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유자재로 붓을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감탄이 절로 나왔다. 붓이 여러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무릎이 탁 쳐졌다. 반드시 중봉을 지켜야 하기에 출발점에서 붓은 똑바로 세워져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마치 이것은 다른 것을 시작하기에 몸가짐을 바로 잡듯이 말이다.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글을 쓰면서 내 혼잣말로 팔꿈치를 안으로 또 팔꿈치를 밖으로를 외치면서 수십 장의 화선지에 먹물을 묻혔다. 한 참을 지나니 선생님이 그려주신 것과 얼 추 비슷한 그림이 나왔다. 저절로 어깨가 으쓱거린다. 선생님의 탁월한 지도아래 나도 이제 획을 그을 수가 있구나!
그리고 별을 그렸다. 그것은 붓의 방향을 자유자재로 가게 하는 연습이다. 이어서 꺽쇠 그리기, 동그라미 그리기, 꺽쇠와 동그라미 그리기를 합체하여 그리기 기로 과정이 이어졌다. 별을 그리는 것은 붓의 방향을 바꾸는 데 참 유용한 연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번 하다 보니 별이 더 균형이 잡히고 부드럽게 잘 그려진다. 여러 번 여러 번 하는데도 하나도 지루하지가 않다.
그리고 꺽쇠와 동그라미 그리기 연습이 이어졌다. 선생님의 설명은 짧았지만 눈길은 항상 내게 닿아있었다.
유심히 바라보시다가 멀리서도 달려와 바른 붓길로 인도해 주신다. 선생님이 내 손을 잡고 글씨를 바로 잡아 주실 때는 어릴 적 아버님이 생각난다. 국민학교 1학년때 아버님이 내 손을 잡고 획순을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문지 위에 펜으로 글씨를 연습하시던 것을 내가 따라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 덕분에 글씨 쓰는 것이 내게는 즐겁고 싫증이 나지 않았다. 내 손을 잡고 글씨를 써주시는 선생님 손길이 아버님의 따뜻한 마음과 연결된 것 같다.
한 땀 한 땀 쓰다 보니 시간이 벌써 다되었다.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다. 인사하고 돌아오는 길이 아쉽고 가볍다. 선생님을 통해 새로운 길을 안내받은 느낌이다.
한 방향만 고집하고 살아온 나에게 새로운 길을 보여주신 듯하다. 명예퇴직으로 은퇴를 하고 아이들과의 현장을 기간제 교사로 잠시 이어가고 있다. 이때 갈길 몰라 헤매고 있는 내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셨다. 붓을 여미듯 내 몸가짐을 바로 하고 내 온 정신을 곧추 세운다. 선생님처럼 글씨로 마음을 표현하며 붓과 노니는 삶도 괜찮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