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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규리 Oct 24. 2024

은퇴 후의 길 찾기

서예선생님을 만나서~~~~

   준비 없이 건강상의 이유로 명퇴를 하였다.                    

가장 기다려지는 점심시간이다. 아이들과 함께 학교 동산의 꽃 길을 지나 식당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가는 동안 아이들은 오늘 급식에 대해 재잘거리느라 정신이 없다. 아이들의 소리가 운동장 한가운데로 퍼져나간다.


명퇴를 하고 6개월 만에 다시 기간제에 도전하였다. 집에서 가까운 서울 상 0 초등학교는 내게 많은 선물을 주었다. 귀여운 아이들 19명과 서예선생님, 오카리나 선생님, 6개월을 함께 할 동학년 선생님들을 선물로 만난 것이다.


서예수업은 캘리그래피란 이름으로 9주 동안 진행되었다. 글씨를 쓰고 또 붓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 짧은 동안에 배운 실력으로 전통부채에도 그림을 그렸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9주 동안 이루어진 수업을 통해 얻어진 아이들의 작품을 차곡차곡 모았다. 그래서 <당현천을 쓰고 그리다.>라는 이름으로 전시회까지 열었다. 부장님의 기획력이 탁월했고 서예선생님의 노고가 담긴 역작이다. 아이들이 더 감동했다.


'우리가 이런 일을 하다니...'


전교생에게 우리가 만든 작품을 보여주면서 뿌듯해했다. 예전에는 내가 부채에 그림 그리는 일은 꿈도 꾸지 못했다. 이 경험을 통해 나도 할 수 있겠다 생각되었다.


부채에 이렇게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아이들과 함께 소소하게 그려보는 작품이다.

  아이들과 함께 서예수업의 학생이 되어 같이 쓰고 함께 그렸다. 작품을 완성하고 바라보니 뭔가 이루어냈다는 성취감을 느꼈다. 쓰고 그리는 과정에서 변화를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썼더니 완성되었고 그렸더니 작품이 되는 게 신기했다.


 서예수업이 끝나던 마지막 시간이었다. 선생님의 손을 꼭 잡았다. "선생님 저도 선생님의 제자가 되고 싶어요. 가능할까요?" 내 손에 힘이 느껴지셨을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그럼 담주 토요일에 우리 집에 한 번 놀러 오세요."


  아담한 집에 널따란 책상이 3개 펼쳐져 있었다. 거실에도 한 개, 작은 방에 2개... 책상 위에는 서진과 벼루가 얹어져 있었다. 한 책상마다 네 사람씩 쓸 수 있는 공간이 나왔다. 선생님께서는  붓과 먹물과 자른 한지를 여러 장 내게 가져다주셨다. 그리고 가로획 긋기를 알려주셨다. 가로 긋기에도 기필과 행필 그리고 수필이 있음을 몸소 보여주셨다. 짧은 나의 서예 상식으로 획을 그을 때 역입의 기필과 회봉의 수필은 알고 있었다. 3번에 걸쳐 행필하는 모습을 새롭게 배우게 되었다. 그렇게 그은 획은 훨씬 힘이 넘쳤다. 살아있는 획이 되었다.


기필과 행필 그리고 수필을 선생님을 이렇게 설명해 주셨다.  역입과 회봉도 붓을 놀리는데 중요한 요소이다.
시작이 어디인지 그리고 끝이 어디인지 몰랐다. 그러나 시작점을 따라 이동하고 간격을 맞추다 보면 시간이 후루룩 간다.

  선생님의 붓놀림은 탁월했다. 눈감고도 획을 척척 그으실 정도였다. 이렇게 그으시려면 얼마나 오랫동안 글씨를 쓰셨을까? 선생님의 나이도 이제  두번째 서른 살을 넘기셨다. 더 놀라운 사실은 중학교 때부터 붓을 잡고 이제껏 함께 해오셨단다. 하루에 14시간 동안 글씨를 쓰셨다는 이야기는 너무 감동적이었다.

" 선생님의 건강이 제일 걱정돼요. 오랫동안 함께 하려면 건강하셔야 된다."면서 옆에서 글씨를 쓰는 선배님이 말씀하신다.

한평생을 한결같이 서예를 해오신 선생님에게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탁월함과 멋진 성품이 느껴졌다.


지금의 나를 선생님의 모습에 비추어 본다. 배우고 싶은 것이 많아 호기심에 따라 이 것 저 것을 들쑤시고 집적였다. 그러다가 놓아버리고 다시 호기심을 찾아갔던 내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내 머리를 스친다. 그 결과 아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것도 아닌 상태 딱 고만 큼만이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잘 하고 싶었폼나고 싶었다. 노력해서 그 탁월함을 얻고 싶었다. 그러나 호기심을 쫓아 여러 가지를 하였다. 시간과 돈과 공력을 들이는 동안 탁월함보다는 깊이 없는 앎만 늘어났다. 아쉽다.


정진 교수님이 <미쳐야 미친다>라는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황상아, 학문의 길은 넓고 깊게 뚫어야 한다."  어렵게 제자가 된 황상에게 정약용님이 주신 말씀의 요지이다.. <넓게 깊게>가 내게 깊이 박혔었나 보다. 그러나 짧은 재능으로 그것을 쫓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앎의 영역을 넓히고 깊게 하는 것은 많은 공력이 필요하다. 그렇게도 바라던 탁월함도 얻을 수 없었다. 선택과 집중이라야만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이렇게 허송세월을 한 뒤에야 알게 되었다.


이제 겨우 마음을 추스른다. 인생은 60부터라고 했다. 이제 두 살이 되었다. 이제껏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넓은 터를 닦았다. 그곳에 서예라는 깃발을 꽂아 보려 한다. 그리고 이제껏 살아온 내 삶의 끝자락에 만난 이 귀한 배움을 환대할 것이다.

이제야 서예선생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온다. "한 가지에 통달하면 다른 것도 그 눈으로 볼 수 있더라고요." 그분이 살아오신 것으로 증명해 주셨기에 이 말씀이 내게 더 다가온다.


서예를 통해 나도 세상을 보는 눈을 가지기로 마음 먹는다.


 

AI와 함께 그려본 미래의 내 마스코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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