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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규리 Oct 27. 2024

은퇴 후의 삶 4

기간제 교사 도전기


작년 8월 31일이다. 뜬금없이 생각지도 않게 명퇴를 했다. 몸이 갑자기 안 좋아져서다. 명퇴를 하면 편히 쉴 줄 알았다. 그러나 이제껏 번 것을 먹고, 입고, 쓰고  아들 둘 교육하고 나니 남는 게 없었다. 명퇴를 하니 당장 빌려 쓴 아이들 학자금부터 청구되어 연금도 별로 넉넉지가 않았다. 그리고 배우려는 호기심 때문에 또 돈이 필요했다. 가장 중요한 이유가 또 있었다. 아이들과 아직 헤어질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결정적인 이유가 그것이다.

 결국 기간제교사 자리를 구했다. 서울 교육포털 사이트를 뒤져서 올 3월부터 8월 말까지 6개월간 00초 근무를 마치게 된다. 그러니 8월 이후에 또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옆 교육청에 계시는 수석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기간제 자리를 구한다는 것이다. 출근 거리,  맡을 학년을 꼼꼼하게 따져보았다. 수석님의  말씀을 듣고  00 초등학교  기간제에 이메일로 지원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자기소개서 쓰는데 4일 정도 시간과 공을 들였다. 그리고 또 시간을 잘 맞추어 이메일 지원을 하였다. 그랬더니 교감선생님께서 바로 답장을 해주었다. 지원해 주어서 고맙다는 이야기이다.

  서류가 통과되었다. 바로 이틀 후 면접시간이 정해졌다. 나는 빠뜻한 면접시간에 맞추기 위해 IM 택시 드라이버인 남편을 학교 앞에 오게 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자마자 택시를 타고 면접 장소로 달려갔다. 교감선생님, 그리고 수석교사님, 또 현 담임 선생님이 면접관으로 나오셨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면접이 진행되었다.

  이미 나의 소개서를 보신 그 분들은 나에게 개명이유를 물으셨다. 그래서 나는 호기심이 많아 배우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은 내 모습을 바꾸겠다는 일념으로 걸음걸이란 뜻도 있는 별이름규와 똑똑할 리라는 글자를 합해 규리라고 지었다. 그리고도 어머님께서 개명한 이름을 1년을 불러 주셨다.  그 후에야 개명했다고 말했다.

  나를 소개하라고 해서 10년간 회복적 생활교육을 해온 것, 존중과 돌봄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아이들과 함께 생활해 왔다는 것을 강조드렸다. 특히 존중의 약속을 아이들과 함께 정하고 중간중간 점검하였다. 또 배운 것을 실천으로 이끌어내는 양치기 리더십을 적용하고 있다고도 피력했다.

특별히 관계 가꿈에 뜻을 갖고 갈등을 조정하는 일에 노력하고 있다고도 말씀드렸다. 살짝 긴장은 되었지만 떨리지는 않았다.

  교감선생님께서는 MZ 세대들의 민원에 대응하는 것에 대해 물으셨다. 나는 학부모 서클로 학부모와 연결했던 경험을 말씀드렸다. 그리고 아이들이 매일 쓴  배움 일기를 부모님께 보내서 부모와도 서로 소통할 수 있다고도 표현했다.

 10분의 면접시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음이 상기되었고 또 이상했다. 한편으로는 혼자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이제는 단단한 철밥통 공무원이 아니라는 생각이 나를 외롭다고 생각하게  했다.

  나는 예전 같으면 떨려서 이야기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떨지 않았다. 그것은 나의 그림자를 온전히 인정하기로 마음먹어서다. 이전의 나는 흠 없기를 꿈꾸고 또 나의 흠을 감추기 위해 끊임없이 배우고 그것으로 나를 포장해왔다. 나의 흠과 또 못남이 드러나면 안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럴수록  긴장했고 떨렸다. 그리고 제대로 말도 못 했다. 최근 디펙 초프라의 그림자효과를 읽고 깨달았다. 그림자 또한 나라는 것이다.  그 말을 인정하는 순간 나는 비로소 깊은숨을 내쉬었다. 한편으로 해방감을 느꼈다. 이제 까지 살아온 것처럼 허물을 감추려고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비로소 내게 알려주었다. 내가 지금 여기에 있는, 요만큼이 내 모습이라고 인정하는 순간 이제 더 이상 나를 포장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었다. 긴장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제야  여유의 미소가 내 볼을 타고 내려왔다.

  만 하루가 지난 오늘 금요일 3시 교실에서 아이들 성적을 정리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지난 화요일에 받은 그 전화번호였다. 지원한 학교의 교감이라고 밝히시면서


"우리 학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냐?"라고 하셨다.


그래서 "한 번 근무해보고 싶은 곳이다"라고 말씀드렸더니 웃으셨다.


"박규리 선생님께서 합격하셨다.  9월 전에 인수인계해요. 그때 서류도 함께 가져오세요."라고 말씀하셨다.


"다시 일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라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감사함이 솟구쳤다. 일자리가 있음을 알려서 지원하게 해 주신 수석님, 면접시간에 맞춰 갈 수 있게 도와주신 남편, 나의 건강, 또 눈에 보이지 않은 도움의 손길들에 감사함이 쏟아졌다.수석님께도 톡으로 "♡♡초와 잘 연결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새롭게 만날 아이들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그런데 반년만 하고 헤어지는 상♡초 아이들과 헤어지는 것이 아쉽고 서운하다. 이것이 기간제 교사의 비애이리라. 오늘은 그래서 아이들과 피자를 나누어 먹으면서 서클을 하였다. 함께 돌아가며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쉬움을 달랬다.

 한 학기 동안 좋았던 것, 아쉬웠던 것, 그리고 더 노력해 볼 것을 나누었다. 아이들은 배움 일기를 쓴 것, 코다이 손기호로 노래 부른 것, 서클로 서로의 마음을 연결한 것, 존중의 약속을 우리가 만들고 지켜나가려고 애쓴 것, 당현천을 쓰고 그린 것 등의 추억을 나누며 서로 연결되는 시간을 가졌다. 함께 나누니 서로의 마음이  충만해졌다.

이제 새 학교에서 새로 만날 아이들과도 잘 연결되기를 희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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