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아는 것을 경계하는 사람은 모른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
오늘 역삼역 근처에서 퍼스널 트레이닝 샵을 운영 중인 한 멋있는 남자와 두 시간가량의 담화를 가졌다. 그는 자신이 트레이너 이기보다 사상가에 가깝다고 말하였다. 나는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모든 관점에 동의하였고, 고개를 끄덕였고, 추임새를 넣었다.
그는 유형의 것과 무형의 것을 구분했고, ego와 그 반대의 것을 구분해냈다. 경계는 모호하지만 방향은 정확하다. 전체적으로 그 모든 것은 자연적이며 본질적인 것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게 본질이라는 것이 늘 그렇듯 마지막엔 물음표가 남게 되었다. 그는 오늘 옳은 말을 했는가? 옳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진실인가? 좋은 것인가? 좋고 나쁨의 경계에는 무엇이 있는가? 좋고 나쁜 것에는 의미가 없는가? 그럼 왜 평가에는 목적이 있는가? 목적이 있는 것에는 존재의 이유가 있는가? 이유에는 의미가 결여될 수 있는가? 결국 질문밖에 남지 않는다.
그의 지인인 작가는 글을 쓸 때, 일단 똥을 싸지르고 나중에 그것으로 조각을 빚는다고 했다. 오늘은 내가 똥을 싸지를 차례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던져보았다. 여기서 어떤 이야기가 더 가능한가? 나도 너고, 너도 나고, 이 세상도 나고, 우리 토토도 나다. 여기에 부정할 수 있는가? 긍정할 수 있는가? 긍정과 부정은 인간의 한계를 가진 '나'라는 존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아마 세상과 나를 구분 짓지 않고 '하나'라고 외치며, 깨달음을 주장하는 '나' 들은 자신이 super unique 하다고 느낄 수는 있겠다. 모든 존재는 특별하고 싶어 한다. 물리적으로 실존하는 것들은 관심받을 때 비로소 존재한다는 양자로 구성되었기 때문인가? 그런데 '나'가 fucking normal하지 않고 super unique 하다는 감각이 '존재'하는 데 그렇게 중요한가?
나는 모르겠다. 그런데 잘 모를 때는 아는 것들 중 하나를 잘 골라 곱씹어 본다. 음 내가 아는 것은.. '사람은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말 수가 적어진다.'는 것이다. 아 글이 길어지는 것을 보니 나는 그야말로 fucking normal...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다.
...?
뭐지?
이럴 때 내가 잘 쓰는 필살기가 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손을 잡고 사랑을 전파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