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린 일정의 마지막 날, 운 좋게도 20세기 초반 아일랜드 국민 연극운동의 요람으로 유명한 Abbey Theater를 찾게 되었다. 미리 날짜를 맞춘 것 처럼 11월부터 이어지던 공연의 막공날!! Lennox Robinson이라는 아일랜드 극작가의 1933년 작인 'Drama at Inish'라는 작품이었는데, 한 작은 아일랜드의 시골 마을에 체홉과 입센, 스트렌드베리를 공연하는 연극단체가 찾아오면서, 소박하고 단순하게만 살아오던 시골 사람들의 불온한(?) 변화와 마을에 일으킨 파장, 그리고 진정한 예술의 가치에 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연극이었다. 관록이 넘치는 국립극단 배우들이 이끌어가는, 무대 변화가 없는 4막의 정통 리얼리즘 연극이었는데, 극의 중간중간에 코믹한 장면들을 집어넣어 지루할 틈 없이 볼 수 있었다. 처음 경험한 아일랜드 극장인 만큼 무대와 더불어 관객과 극장문화도 지켜볼 기회가 되었는데, 거의 만석을 기록한 관객의 다수가 노년층임에 놀랐다. (클래식 인구와 더불어 정통 연극의 향유층도 고령화되는 것일까?) 하지만 관객들은 전혀 엄숙하지 않은 자세로 아는 노래가 나오면 따라 부르고, 손뼉을 치기도 하면서 무대에 적극 호응하며 한껏 즐기는 모습이었다. 커튼 콜에서는 아무도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았고, 요란한 기립박수는 없었어도 배우와 관객으로 서로가 공유한 140분의 시간을 뜨겁게 함께 축하하는 훈훈한 시간이었다. 여행의 마지막 일정으로 오래 기억에 남을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