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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uwan Kim Oct 22. 2023

백년 동안의 증언

  이 책은 일본인 은사의 추천으로 1923년 간토대지진 때 있었던 조선인 학살과 국가폭력 문제를 연구하게된 저자가 그 결과를 23년만에 단행본으로 엮은 책이다. '백인에게 점령당한 남미의 수치스러운 백년을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기록한' 소설제목을  가브리엘 마르케스가 '백년의 고독'이라 이름붙인 것에 착안하여 책의 제목은 '백년 동안의 증언'이 되었고, 실제로 올해는 간토대지진이 발생한 지 꼭 백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1923년 9월 1일 토요일에 도쿄 인근에서 발생한 진도 7.9의 강진으로 14만 2,000명이 죽고, 3만 7,000명이 실종되었다고 한다. 이 엄청난 재난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조선인들이 나무상자에 폭탄을 넣고 다니며 떠뜨려 일본인들을 죽인다.'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넣는다.'는 유언비어가 퍼지고 군인, 경찰, 헌병의 묵인하에, 자경단들이 조선인들을 무차별 학살하기에 이르러, 6,661명(독립신문 추산)의 무고한 죽음을 초래했다. 당시 자경단들이 조선인임을 가려내기 위해 '15엔 50전'을 일본어로 발음하게 한 일은 이젠 많은 사람이 알고 있기도 하고, 나는 작년에 이 장면을 애플TV의 '파친코'를 통해 거칠게나마 영상으로 접하기도 했다. 저자는 책의 절반 이상을 이 사건과 관련된 사료와 당대 일본문인들, 동경유학생들의 자료를 추적하는데 할애한다. 그 중에 스보이 시게지라는 일본의 시인이 1948년에 발표한 '15엔 50전'이라는 장문의 서사시가 강렬하게 눈길을 끈다.

  책의 후반부는 이런 잔혹한 역사 속에서도 진실을 바로 보고, 이를 알리려 노력한 일본의 양심적인 지식인들과 문인들을 소개하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한일관계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는데 할애된다. 관동대지진의 여파속에서 체포된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를 변호한 것을 비롯, 일제강점기와 해방후에도 법정 안팎에서 억울한 조선인 변호에 앞장섰던 변호사 후세 다쓰지, 비국민의 시각에서 오키나와 문제를 비롯, 끊임없이 일본정부에 문제제기를 해온 오에 겐자부로, 우리에겐 '빙점'이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북해도의 소설가 미우라 아야코, 무라카미 하루키, 거금을 모아 제암리에 교회당과 기념관을 세운 목사 오야마 레이지, 저자가 오랫동안 일본에서 생활하며 만났던 시민운동가 등이 언급된다. 아울러 한 때 뉴스를 떠들석하게 했던 극우세력의 헤이트 스피치를 잦아들게 한 '카운터스'라는 조직의 활약 등도 소개하며, 저자는 한일 두 나라의 시민연대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한다. "마치 땅 위의 길과 같다. 원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라는 루쉰의 말을 인용하면서.

여러 면에서 어려움에 빠진 한일관계의 앞날을 모색하면서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나로서는 오에 겐자부로의 책을 좀 찾아읽어야겠다는 결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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