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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uwan Kim Oct 27. 2023

그래도 인생 별 거 있다 - 한시에서 찾은 삶의 위로

AI니 chat GPT니, 플랫폼이니 해서 세상이 급속히 휴대폰과 인터넷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지만, 생로병사를 겪고, 가족을 걱정하고, 불안한 내일에 가슴졸이는 인간의 근본적인 삶이 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있을까? 이 책은 한시를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는 글로 쉽게 풀어 꾸준히 책을 내온 저자의 새글 모음집이다. 책은 존재와 자연, 사색과 감성, 해학과 풍자, 삶과 사랑이라는 네개의 주제하에 엮은 짧은 글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글에는 저자가 가려뽑은 고려, 조선시대의 한시 한 편과 이에 대한 저자의 감상이 실려있다.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한시의 한글풀이를 앞에 배치하고 한글도 가능한 오늘날의 입말에 가깝게 풀이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마음에 남는 시 한 편... 사랑하는 친구와 이별하는 마음을 담은 16세기에 쓰여진 이 시의 정서는 지금 읽어도 전혀 어색하거나 낯설지 않다.


- 사람을 보낸뒤에

네가 오는 건 어찌 그리 느렸는지

간다는 말은 왜 또 그리 급한지

아침에 눈물 뿌리며 작별하고

저물녘엔 누구의 집에서 자려는지

북풍은 끊임없이 불고

다리 밑의 물은 급히 흘러

성 밑의 굽이진 길로 가는

너를 바라보는데 애가 끊어질 듯

빈산에 혼자 서 있다가

돌아보니 옷에는 눈이 가득


그렇다고 이 책의 시들이 시대를 초월한 삶의 보편성이나 음풍농월하는 내용만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옛시를 다시 읽는 저자의 단단한 목소리를 책 여기저기에서 들을 수 있다. 이를테면 이런 구절들...

나라는 개인이 어쩌지 못하는 일을 해결해 주어야하지, 세금을 받고 의무를 강조하면서 나라에 충성하라고, 모두를 위해 희생하라고 강요만 해서는 안된다. (p.170)

국민을 지켜주어야 할 나라, 그 나라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이 국민의 아픔을 모조리 개인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p.171)


한자나 우리 옛글에 대한 가독성이 나날이 떨어져가는 요즈음에 이런 책이 아니었다면,  윤선도, 정약용, 이황, 서거정, 이규보 등 우리가 흔히 성현이라고 부르는 분들의 한시를 내가 읽어볼 엄두나 냈을까? 깊어가는 가을... 옛 시귀절에 세상살이의 이치와 더불어 자신의 지금 삶을 모습을 비추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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