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러브레터라는 작품을 떠올리게 했다. 단 러브레터가 이루지 못한 두 남녀의 평생에 걸친 우정과 동경의 이야기가 편지글로 낭독되며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었다면, 이 작품은 사랑을 이룬 한 커플의 일생을 최소한의 대사와 다양한 몸짓으로 섬세하게 재연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러브레터가 미국인들의 삶의 회고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 이 작품은 7~80년대에 걸쳐있는 한국 부부의 일생을 뒤돌아본다. 치매에 걸린 듯한 노부인이 거울 속을 지나며 한 소년과의 어린 시절 만남으로부터 시작하여 그들의 소년기, 학창시절, 부부생활 등이 재연되는데, 치매에 걸린 지금에도 그 시절을 소환하는 건 어린 시절 쓰고 다니던 노란 모자이다. 간단한 소도구와 소품만으로 50여년 세월을 넘나드는 두 배우의 노련한 연기력과 열정이 돋보인 무대였다. 50분으로 요약하기엔 한 평생이 너무 긴 거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어쩌면 시간은 그런 속도로 지금 우리 곁을 스쳐가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