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시인
오은시인의 강연을 들었다. 실은 고등학생을 상대로한 강연에 슬쩍 끼어든 것이었는데 연단가까이 2열에 앉은 죄로 수시로 뜻하지 않은 질문 세례를 받게 되었다. 그 중 가장 당혹스러웠던 질문은 '장래 희망이 뭐세요?' 허걱... ^^;;
장난꾸러기 소년의 순수한 느낌을 아직도 간직한 40대의 시인은 시를 쓴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나 사물이 되어보는 것이라고 자신의 시론을 펼치며, '그래도'의 문학에 대해 아이들 눈높이에서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평소라면 잘 안읽었을 시들을 몇 편 읽었는데 그 중의 한 편! (창비에서 청소년 시선집을 따로 내는구나!!!)
나는 오늘
- 오은
나는 오늘 토마토
앞으로 걸어도 나
뒤로 걸어도 나
꽉 차 있었다
나는 오늘 나무
햇빛이 내 위로 쏟아졌다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위로 옆으로
사방으로 자라고 있었다
나는 오늘 유리
금이 간 채로 울었다
거짓말처럼 눈물이 고였다
진짜 같은 얼룩이 생겼다
나는 오늘 구름
시시각각 표정을 바꿀 수 있었다
내 기분에 취해 떠다닐 수 있었다
나는 오늘 종이
무엇을 써야 할지 종잡을 수 없었다
텅 빈 상태로 가만히 있었다
사각사각
나를 쓰다듬어 줄 사람이 절실했다
나는 오늘 일요일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오늘 그림자
내가 나를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잘못한 일들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나는 오늘 공기
네 옆을 맴돌고 있다
아무도 모르게
너를 살아 있게 해 주고 싶었다
나는 오늘 토마토
네 앞에서 온몸이 그만 붉게 물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