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
‘티투바’라는 낯선 이름을 처음 만난 건 아서 밀러의 ‘시련’(The Crucible)이라는 연극에서였다. 1692년 매사추세츠주의 세일럼에서 있었던 마녀재판을 배경으로 한 이 연극은 당시 마을을 혼돈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마녀사냥 뒤에 존재했던 주민들간의 이기심, 질투, 사적 복수심이라는 집단광기를 잘 드러낸 걸작이고, 아서 밀러는 1950년대에 미국을 휩쓸던 매카시즘을 비판하기 위해 이 오랜 과거의 미국 역사를 소환하였다. 반면에 이 책은 당대의 마녀재판을 티투바라는 흑인 여성 노예의 시선으로 다시 그리고 있다. 놀랍게도 ‘시련’에 등장했던 인물들 다수가 소설에서 그대로 다시 등장하는데, 연극이 애비게일 윌리암즈와 존 프락터의 스캔들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데 반해, 소설에서는 희곡에서 생략된 당대의 역사사회적 배경을 마녀재판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흑인여성의 목소리로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카리브해에 위치한 바에이도스라는 섬 출신의 티투바가 미국 본토에 노예로 팔려가, 보스톤을 거쳐 세일럼에 흘러들어, 마녀 재판으로 감옥에 투옥되고 (그녀는 감옥에서 마녀사냥의 또 다른 저명한 피해자인 ‘주홍글자’의 헤스터로 보이는 백인여성을 만나 서로 의지하기도 한다!) 다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와 흑인반란을 도모하다가 결국 처형되는 방대한 스케일의 이야기는 마녀재판 이야기가 오히려 작아보일 정도로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화 과정과 노예제에 대한 강렬한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킨다. 티투바가 흑인으로서 한 여성으로서 겪는 엄청난 고난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 여정의 후반에 당시 미국 사회의 유태인 문제까지 그려내려한 것은 소설의 주제를 다소 산만하게 만든 느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읽는 내내 긴장의 끈을 놓지못하고 흥분하게 만든 책이었다. 아서 밀러와 나다니엘 호손이 누락한 마녀재판을 둘러싼 미국사의 뒷이야기를 직접 읽어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