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날다
지금은 보기 힘든, 여성 4대가 사는 대가족을 그린 연극, '피어 날다'를 보고 왔다. 갈대밭 가운데 허름한 집에 거주하는 이들은 한국 현대사의 구비구비마다 존재했던 국가폭력의 직간접적인 피해자들인데, 치매증상의 증조 할머니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남편을 여전히 기다리고 있고, 할머니의 남편은 삼청교육대 후유증으로 저수지에 빠져 돌아가셨고, 국가를 상대로 이를 법적으로 해결하려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법적인 이혼 상태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고, 마지막 세대인 딸은 고3인데 동네 오빠와 연애를 하다 임신한 상태다. 어찌보면 다소 작위적이랄 수 있는 이런 상황의 연결이 아주 자연스럽고, 이런 상황에서도 일상의 섬세한 순간을 포착해 그려내는 장면의 표현이 빼어나다. 더 인상적인 것은 이 작품이 그저 흘러간 과거 상처의 치유나 화해만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최근의 정치상황을 우회적으로 반영하여 극의 생생함과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연극에서는 계엄에 대한 시민들의 피해보상 소송, 비상식적으로 우회한 고속도로 건설 등에 관한 언급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이 70년간 거주해온 집이 하루 아침에 헐려나갈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최근에 본 창작극 중에 작품성과 연극적 재미를 모두 살린 단연 수작이다. 오늘이 막공이었는데 분명 재공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