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박인환, 시를 살다

by Kyuwan Kim

공연장을 찾는 일이 웬만한 입국심사보다 더 까다로운 시절... QR코드를 찍어 신상을 입력하고, 발열체크를 하고, 신분증을 제시하고 나서, 한 칸 씩 거리두기를 하는 객석에 겨우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까지 해서 보고 싶었던 공연은 극공작소 마방진의 '박인환, 시를 살다'... 박인환의 출신지인 인제의 인제문화재단에서 주관한 공연으로 10월에 있을 지역축제에서 공연될 듯 한데 서울에서 주말에 단 2회 공연되었다. 그저 국어 시간에 배운 대로, 감각적인 시어로 '세월이 가면', '목마와 숙녀' 같은 불멸의 시를 남긴 모더니즘 계열의 시인으로만 알고 있던 멋진 시인의 삶과 문학을 그가 살았던 시대적 맥락에서 훨씬 더 친근하고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일제강점기 한가운데 태어나 해방과 전쟁을 겪은 그는 서른 한살이라는 꽃같은 나이에 심장마비로 요절했다고 한다. (1926~1956) 격동했던 시대의 인물군상들을 단 8명의 배우가 다양하게 연기했는데, 각 캐릭터의 특징들을 때로는 코믹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잘 소화하여 90분이 짧게 느껴졌다. 전체적인 배우들의 앙상블도 좋았지만, 시종 시인의 방황과 고뇌를 깊이 있게 소화한 박인환역의 홍의준배우와 50년대 댄스홀의 마담역할 등을 감각적으로 잘 표현한 이소연배우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30여년 가까운 세월을 표현하는데, 절제된 소품과 영상, 무대 디자인만으로 시대의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잘 표현했고, 속도감있게 전개된 점도 좋았다. 시절이 좋아지면 더 긴 기간동안 관객들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울러 이 공연을 계기로 요즘같은 지방자치 시대에 그 지역 출신의 문인이나 예술가의 삶을 연극으로 정리해보는 더 많은 좋은 작품들이 기획되고 공연되면 좋겠다. 우리 근현대사의 소중한 예술가들을 기리고, 즐기며 사랑할 사람이 우리가 아니면 누구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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