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Kyuwan Kim Dec 24. 2019
문학평론가 오길영 선생의 산문집 ‘아름다운 단단함’을 읽었다. 책은 주제별로 세상, 영화, 책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1부 ‘세상’에는 이 시대의 다양한 삶과 책의 풍경을 주제로 한 짧은 글들이 모여 있다. 책의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예술작품을 평하면서 ‘먹고사니즘’의 중요성과 삶의 물질성을 철저히 인정하며 삶과 분리되지 않은 평론을 지향하는 그의 미학적 기준이 잘 드러난 글들이다. 저자는 이 시대가 ‘사회비평과 문명비평으로서의 비평의 위엄이 사라진 시대’임을 인정하면서도, 삶과 분리된 작품의 아름다움은 공허하다고 단언하면서, 김수영에 ‘기대어’ ‘문학은 “조용한 물끓는 소리”이고 “조용한 반응”이다. 그 “조용함”이 어쩌면 조용하게 세상을 바꿀지도 모른다’라고 말한다. 글의 중간 중간에 소개되어 있는 예이츠, 에밀리 디킨슨 등 영미권 시인들의 시와 신영복, 김수영의 글들도 저자의 글과 더불어 음미할 만 했다. 2부는 책만큼이나 영화를 좋아하는 저자가 근래에 개봉된 영화에 대해 생각을 정리한 글들인데, 다루고 있는 영화가 흔히 작품성 있다고 일컬어지는 영화부터 DC 코믹스의 원더우먼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삶의 작은 부분에서도 시대적인 의미를 찾으려는 비평가의 꼼꼼한 노력일텐데, 많은 영화가 내가 본 것들이어서, 영화를 떠올리며 나의 감상들과 비교해 보며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 내가 거의 모든 작품을 찾아 본 ‘고레에다 히로카즈’감독의 작품을 세 편이나 다루고 있어 흥미로웠는데, 이를테면 ‘바닷마을 다이어리’에 관한 글을 마무리하는 이런 대목에 밑줄을 그었다. “문학, 영화, 예술은 거창한 일을 하지 못한다. 다만, 그것들은 인간으로서 우리가 잊지 말아햐 할 것들, 지켜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를 되풀이 상기시킨다. 거창한 일들을 한다고 믿는, ‘완장’을 찬 자들이 잊고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운다.” 영화평론가들이 쓴 글과는 또다른, 읽는 재미가 있는 글들이었다. 3부는 문학평론가의 ‘업’인 책을 다루고 있는데, 저자는 여기에서도 전통적인 의미의 문학에 자신의 비평적 시선을 한정시키지 않는다. 고전적인 문학작품을 비롯하여, 동시대 일본소설, 대담집, 철학서적, 만화, 사진집 등이 폭넓게 다루어지는데, 그 중의 어떤 글들은 읽고 이해하기가 만만치 않은 폭과 깊이의 글들이다. 어쨌든 새로 곰곰이 곱씹어 읽으며 앞으로 읽을 도서목록에 책 몇 권을 추가했다. 사회적인 영향력에 있어서 문학이 영화에 자리를 내준지 오래라고 한다. 그런 분위기에서 문학평론가의 비평적 시선을 한껏 확장시켜, 짧고 간명한 단문 중심으로 쓰여진 대중들이 읽을만한 산문집의 출간을 반기며, 이 책이 많은 독자들에게 문학, 영화 혹은 세상이라는 ‘거대하고 심오한 세계로 들어가는 좋은 안내자 역할’을 하리라고 믿는다.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지성과 감수성으로 글을 쓰는 평론가와 ‘동시대를 살아서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