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문학을 전문으로 번역하는 번역가 정수윤의 ‘시로 쓰는 산문’ 에세이집이다. 하이쿠라는 일본 시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만, 이 책은 와카(和歌)라는 일본 고유의 시 65편을 소개하고 있는데, 와카는 5∙7∙5∙7∙7자를 기본으로 하여 나의 마음과 나를 둘러싼 세상 이야기를 담고 있다. 와카에서 5∙7∙5자만을 남긴 것이 하이쿠라고 한다. 계절의 흐름,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 그리움, 외로움, 나이들어감 등을 소재로 한 각각의 와카들은 쓰여진지 천년이 넘은 글임에도 불구하고 짧고 간결한 글귀에 인간사의 희노애락이 묻어 있고, 오늘날 독자들에게도 맑은 울림을 준다. 이를테면 어머니를 잃은 어떤 이가 남긴 이런 귀절... ‘나무 아래로 한곳에 그러모은 언어 잎사귀/ 어머니가 남기는 숲의 유품입니다.’ 작가는 와카 한편 마다 거기에 얽힌 자신의 감상이나 이야기를 담은 짧은 글들을 소개하는데, 자신이 스물 아홉에 문득 직장을 그만두고 일본으로 건너간 일, 번역가로 살면서 겪는 일상들, 책을 번역하고 만들면서 맺어진 일본 문인들과의 인연 등이 공들여쓴 섬세한 문장으로 적혀 있다. 구글 번역기, 파파고 등의 등장으로 번역가를 사라질 직업으로 흔히 꼽고 있는 듯한데, 번역에 들이는 저자의 공력을 보면 꼭 그렇지 만도 않을 것 같다. 도호쿠 사투리를 번역할 적절한 사투리를 찾아 강원도 5일장을 찾아가고, 번역에 있어서 시각적인 이미지를 중요하게 여기는 그녀의 전문가적인 태도에서 번역된 문장 하나하나를 다시 살펴보게 된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녀의 번역으로 이노우에 히사시의 ‘아버지와 살면’을 읽었구나... 책장을 넘기다 보면 당신이 인생의 어느 모퉁이에 있더라도 문득 와 닿는 공감가는 구절들을 분명히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