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아버지와 살면 (이노우에 히사시) ... 동아시아에서 2차대전의 종전을 가져온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의 원폭 투하. 우리 입장에서는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의, 유사이래 최초로 인류가 경험한 피폭이라는 끔찍한 경험이 강조되는 것이 전범국으로서의 일본의 책임을 희석하고 전쟁 피해국으로서의 경험만 부각되는 것 같아 부당하다는 생각이 드는 걸 부정할 수 없을 텐데, 이 문제에 대해 저자는 “일본은 전쟁을 일으킨 가해국으로서 국민 모두가 책임이 있다. 다만 수많은 국민을 희생시킨 원폭의 경우 종전을 지연시킨 천황과 지배층에 더 큰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한다. 일본이 원폭 투하 전에 항복을 선언함으로써 국민의 희생을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에 과연 ‘일본인의 머리 위 뿐만 아니라 인간 존재 전체에 떨어진 것’이라고 저자가 믿는 원폭 투하의 현장은 어땠을까? 이 책은 원폭 투하 3년 후(1948년)에 피폭에서 살아남아 도서관 사서로 살아가는 미쓰에라는 여성이 아버지 다케조와 둘이서 나눈 대화로 이어지는 4막으로 된 2인극 희곡이다. 놀랍게도, 아버지는 피폭되어 돌아가셨지만, 미쓰에의 간절한 열망이 불러낸 환영이다. 멸치 간장조림을 만들고, 말다툼을 하는 두 부녀의 이야기는 여느 부녀의 평범한 일상의 풍경을 묘사하지만, 그 배경에는 피폭경험과 거기에서 살아남은 자의 잔인한 경험들이 짙게 배어 있다. 미쓰에는 상처를 딛고 다시 사랑과 행복을 꿈꿀 수 있을까, 아니면 아버지와 수많은 친구들의 뒤를 이어 파멸하게 될까? 1994년 일본에서 초연된 이후에 세계 여러 곳에서 공연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2014년에 각색되어서 공연되었다고 한다. 피폭의 순간에 관한 미쓰에의 다음과 같은 독백에 마음이 아팠다. “내 친구들은, 거의 다 죽고 없는 거나 마찬가지야. 노구치는 방화용 수조에 선 채로 죽었고, 야마모토는 입과 혀가 새카맣게 부어올라 입게 가지를 물고 걷는 사람처럼 보였다고 하고, 졸업 후 곧바로 결혼한 가토는 갓난아이한테 젖을 물린 채로 숨이 끊어졌어. 가토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던 아기도 세상을 경험해볼 겨를도 없이 저세상으로 떠났고, 중앙전화국에 들어간 오토와는 ‘번쩍’(당시 피해 주민들은 원자폭탄이란 단어가 너무 두려운 나머지 그 이름을 말하지 못하고 번쩍(ピカ) 혹은 번쩍쿵(ぴかどん)이라고 불렀다고 한다.)을 맞아 움직이지도 못하는 후배 둘을 양팔에 껴안고 ‘우린 여길 떠나면 안 돼’하고 서롤 격려하며 죽어갔대. 그날 이후 삼 년이 흘렀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은 친구들도 있고, 그리고 또 아부지도...!” (pp.72~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