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에서 성공으로.

내가 여섯 살 때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가 일하러 나가시면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 했으며, 그때부터 음식 만드는 법을 스스로 배우고 깨우쳤다.

나는 열 살 때부터 농장에서 막노동을 했었고, 열두 살 때 초등학교를 중퇴해야만 했다.

열여섯 살 때는 생계를 위해 나이를 속여가며 미 육군에 입대했지만, 병을 앓는 바람에 넉 달 만에 전역하고 말았다.

이후 증기선 철도 노동자, 보험 외판원, 주유소 일까지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렇게 가난했지만 다행히 결혼도 하고 아이도 얻었다.

그러다 대공황의 격량에 휩쓸려 마흔 살에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다.

믿을 건 어렸을 때 배운 요리 솜씨뿐이었다.

그 경험을 살려 주유소 한 귀퉁이에서 배고픈 여행자들에게 음식을 팔기 시작했다.

테이블 하나에 의자 여섯 개로 시작한 레스토랑은 입소문을 타고 날로 번창했다.

큰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모텔을 지었다.

그러나 불이 나는 바람에 레스토랑과 모텔은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나는 그 자리에 레스토랑을 다시 지었지만, 고속도로가 관통하면서 손님은 뚝 끊겼고, 결국 남은 것은 빚더미뿐이었으며, 아들을 잃고 아내에게도 버림받는 지경에 으르렀다.

나이 60에 모든 것을 잃고 극한 상황에 내몰리다 정신병원 신세까지 지게 되었다.

어느덧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었고, 사회보장기금 105달러를 들고 마지막 희망을 찾아 나섰다.

낡은 트럭에 요리 기구를 싣고 전국을 떠돌며 개발한 닭고기 조리법을 팔러 다녔다.

배고픔과 굶주림에 시달릴 때면 요리 샘플을 뜯어먹으며 끼니를 때웠다.

무려 1,008번이나 퇴짜를 맞고 문전박대를 당하며 거듭 실패했다.

마침내, 1,009번째 시도에서 옛 친구의 레스토랑에 치킨 한 조각당 4센트를 받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다.

그런 가운데 본격적으로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을 운영하기 시작한 것은 65세 때였다.

레스토랑은 대성공을 이뤘고, 지점이 2년 사이 600여 개로 불어났으며, 이후 150여 개국에 2만 개 이상으로 늘어나며 승승장구했다.

그렇게 남다른 끈기와 집념으로 지금은 가난한 사람들의 희망이 되었다.

노새를 타고 산맥의 산골 마을들을 찾아다니며 식자재를 나눠주는 등 빈곤층을 위한 봉사 활동을 했다.

회사 수익금을 교회와 병원, 보이스카우트, 구세군 등에 보내며 외국 고아를 70명이나 입양해 보살피기도 했다.

이렇게 극적인 인생을 살다가 급성 백혈병으로 90세에 세상과 작별했다.

그 뜻을 이어받은 KFC 기금은 지금도 세계식량기구를 통해 굶주리는 사람들을 돕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KFC 매장 입구에서 흰 양복에 지팡이를 걸치고 서 있는 노신사 커넬 샌더스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사람이 바로 나다.

-고수의 한 수-


-할랜드 데이비드 샌더스-


훌륭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많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드물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대신 무언가를 할 때마다

그 경험에서 배우고

다음번에는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을 뿐이다


건강과 행복 즐거움과 미소를 전하는 마법사 &

좋은 사람이 되어 줄게 저자 김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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