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생각이 많아지는 날이 있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머릿속이 조용해지지 않는 날.
이런 날엔 괜히 책상 정리를 한다.
필요 없는 종이를 버리고,
쓰다 만 메모를 다시 읽어보고,
펜을 가지런히 맞춰 놓는다.
생각을 정리하지 못할 때
사람은 공간부터 정리한다는 걸
나는 여러 번의 생활 끝에 알게 됐다.
기획 일을 오래 하다 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정리하는 사람’이 되었다.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회의를 정리하고,
사람들의 말을 문장으로 정리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작 내 생각은 늘 마지막에 남는다.
회사에선 늘 빠른 판단을 했고
현장에선 망설이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집에 돌아오면 사소한 질문 앞에서 오래 멈춘다.
이 선택이 맞는지,
이 방향이 나다운지,
지금 쉬는 게 도망은 아닌지.
생활노트는
그 질문들을 바로 해결하려는 노트는 아니다.
다만 나는
답을 내리기 전에
질문을 그대로 두는 연습을 하고 싶었다.
기획자로 일할 땐
언제나 결론이 필요했다.
결론이 없으면 미완성이었고,
미완성은 곧 불안이었다.
하지만 삶에서는
모든 질문에 당장 답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이제야 조금 배워간다.
요즘 나는
‘잘 살고 있는지’보다
‘너무 무리하고 있진 않은지’를 더 자주 묻는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보다
지금 서 있는 자리를
제대로 느끼고 있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아마도 이건
기획자의 변화라기보다
사람으로서의 변화일지도 모른다.
생각이 많은 날은
괜히 나를 다잡으려 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은 그런 날이라고
조용히 인정하고,
조금 느리게 움직인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도
언젠가는 쓸모 있는 문장이 될 거라는 걸
나는 기획자로서 이미 여러 번 경험했으니까.
그래서 오늘의 생활노트는
결론 대신 이 문장으로 남긴다.
생각이 많다는 건,
아직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