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계획을 세우는 사람

by 비하인드 예린

나는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다.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그날 해야 할 일 몇 가지,

다음 달에 해보고 싶은 것들,

올해쯤 이루고 싶은 작은 목표들.


어쩌면 직업 때문일지도 모른다.

기획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계획을 세우는 습관이 생겼다.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는

항상 먼저 구조를 생각했다.


어디서 시작할지,

무엇이 먼저인지,

그리고 무엇을 하지 않을지.


하지만 삶은

기획서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예상했던 일들이 늦어지기도 하고

계획에 없던 선택을 하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한동안은

계획을 세우는 일이

조금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차피 바뀔 텐데

왜 굳이 적어 두는 걸까.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노트를 펼친다.


아마 계획은

미래를 정확하게 맞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디쯤 서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방향이 없을 때

더 쉽게 지친다.


완벽한 계획이 없어도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만 알아도

걸음을 옮길 수 있다.


그래서 요즘 나는

예전처럼 촘촘하게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대신

대략적인 방향만 남겨 둔다.


조금 느슨하게,

조금 유연하게.


그래도 괜찮다고

나에게 말해주면서.


생각해 보면

계획은 미래를 묶어두는 일이 아니라

나를 앞으로 움직이게 하는 작은 약속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노트 한 페이지에

몇 줄의 계획을 적어 둔다.


아마 내일은 또

조금 달라질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여전히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니까.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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