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 위에 오른 내 첫 브랜드
도마 위에 오른 내 첫 브랜드
나는 브랜드를 직접 ‘만든’ 사람이다.
누군가는 브랜드를 경영으로, 누군가는 디자인으로 기억하지만
나는 늘 ‘도마’ 위의 감각으로 브랜드를 떠올린다.
스타벅스, 던킨, 카페베네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의 현장에서 나는 매뉴얼보다 사람을 먼저 배웠고,
현실보다 이상이 먼저 무너질 수 있다는 걸 눈으로 확인했다.
그런 경험 끝에, 완전히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 기회가 왔다.
배달 전문 브랜드의 한계를 극복하고
고객이 ‘머무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핵심 과제였다.
그래서 나는 회의실보다 주방에서 생각했다.
메뉴 구성, 커피머신 OEM, 동선 설계, 점주 매뉴얼, 브랜드 스토리…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기획했다. 디자이너도, MD도 없이.
기획자이자 조율자였고, 동시에 책임자였다.
그렇게 태어난 브랜드의 첫 매장은
말 그대로 ‘도마 위’에 올려졌다.
프로토타입은 가장 먼저 썰린다
첫 매장이 문을 열자마자 쏟아진 건
고객의 반응보다도, 현장의 피드백이었다.
“현장에서 구현이 너무 힘들어요.”
“왜 이런 조합을 메뉴화했는지 모르겠어요.”
“이거, 진짜 팔릴까요?”
그 말들은 비판이 아니라 진짜 ‘테스트’였다.
직원들의 피드백은 때론 무심했고, 때론 날카로웠지만
그게 바로 브랜드가 살아있는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첫 번째 칼날이었다.
내가 만든 기획이
현장이라는 도마 위에서 한 번씩 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도망치지 않았다.
기획은 결국 숫자로 말한다
나는 다시 메뉴 구조를 쪼개고
직원 동선을 따라가며 동선 재배치를 했다.
조리 과정을 3단계로 압축하고, 고객 응대 스크립트를 정비했다.
그리고 숫자가 나타났다.
고객 유입률 142% 증가
매장 평균 체류 시간 18분 -> 31분
시그니처 메뉴 구성비 8% -> 26%
배달:내점 매출 비중 90:10 -> 65:35 개선
이건 단순히 ‘살아남았다’는 뜻이 아니었다.
이 시스템은 확장 가능하다는 신호였다.
한 매장에서 실험한 도마 위 기획은
이후 전국 매장 타입으로 표준화되었고,
처음엔 실험처럼 시작된 공간이
이젠 브랜드의 대표 매장 모델로 자리 잡았다.
썰려본 기획만이 살아남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때 직원들의 피드백은 꽤 상처였다.
“너무 비효율적이에요.”
“이건 본사 기획자가 매장 일 안 해본 티 나요.”
“차라리 기존 메뉴를 돌리는 게 나아요.”
그 말들을 들으며 퇴근하고 싶은 날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기획자는 ‘사무실 안에서’가 아니라
‘칼끝 앞에서’ 진짜가 된다는 걸.
지금도 나는 회의실보다 도마를 자주 떠올린다.
기획은 회의로만 완성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썰려보고, 자신이 썰어보고,
그 속에서 살아남은 구조만이
브랜드라는 시스템이 된다.
그 칼끝에서 기획자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만든 건 단순한 매장이 아니었다.
현장에서 살아남는 구조였고,
재현 가능한 브랜드화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과정 속에서 내가 가장 크게 성장했다.
<기획자의 키친> 4화 요약
프로토타입은 ‘진짜 검증’의 시작이다.
살아남는 기획은 반드시 현장 칼날을 거친다.
숫자는 기획자의 언어이며, 시스템의 증거다.
기획은 결국 구조로 말해야 한다.
기획자는 늘 완벽한 레시피를 만들고 싶어 하지만,
결국 브랜드를 살리는 건 레시피가 아니라 사람이다.
다음 글에서는 내가 실제로 실패했던 한 프로젝트를 꺼내본다.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메뉴였지만,
그 안에서 진짜 셰프가 자랐고, 브랜드는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다.
〈기획자의 키친〉 5화 – 실패한 레시피, 성공한 셰프
: 실패는 언제나 구조보다 사람에게 먼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