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레시피, 성공한 셰프

기획자의 도마 위에서

by 비하인드 예린


“기획 실패입니다.”


론칭 일주일 차.

신규 매장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에

슈퍼바이저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번엔 기획 쪽에서 좀… 실수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말은 마치

‘당신의 기획, 실패입니다’라고 들렸다.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하지만 속은 쓰렸다.


왜 실패했을까?


솔직히 처음엔 억울했다.

메뉴 조합도 좋았고

브랜드 방향성도 살아 있었고

본사 시뮬레이션상 문제도 없었다


그런데도 현장은 완전히 다르게 반응했다.


“고객이 너무 오래 기다려요.”

“메뉴가 복잡해서 알바가 못 따라가요.”

“한 명이 빠지면 매장이 안 돌아가요.”


결국 나는 ‘현장의 칼’에 제대로 썰린 셈이었다.

기획서는 남았지만, 매장은 무너졌다.


문제는 시스템에 있었다. 그리고, 나였다.


시간을 두고 분석했다.

원인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메뉴의 조리 난이도를 낮게 봤고

현장 동선이 복잡했으며

인력 운영을 현실적으로 설계하지 못했다

매뉴얼은 있었지만 교육 시스템이 없었다


그때 깨달았다.

기획은 결국 ‘사람 없이도 버텨야 하는 구조’여야 한다는 걸.

브랜드는 멋진 아이디어로 움직이지 않는다.

현장에 녹아든 구조로 작동한다.


실패는 무너짐이 아니라, 교정의 신호다


나는 메뉴 수를 줄였고,

조리 흐름을 재설계했으며,

현장 직원들의 피드백을 반영해 매뉴얼을 보완했다.


가장 중요한 건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걸 인정하는 용기였다.


그 후, 매장은 달라졌다.

조리 시간 25% 감소

회전율 상승

고객 컴플레인 60% 감소

재방문율 상승


레시피는 바뀌었고,

브랜드는 다시 살아났다.


기획자는 실패로 단단해진다


프랜차이즈 본사에 있으면

성공한 브랜드는 많이 본다.

하지만 그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몇 번의 실패가 있었는지는 거의 공유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쓴다.

기획자는 실패할 수 있다. 하지만 살아남아야 한다.


진짜 셰프는

완벽한 레시피를 만든 사람이 아니라,

실패한 레시피를 스스로 고친 사람이다.


그날,

나는 한 개의 레시피를 버렸다.

대신 한 명의 기획자로 더 자랐다.


실패한 적 있나요?


당신의 기획이 흔들리고 있다면,

그건 실패가 아니라

더 나은 기획자로 가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만든 구조가 무너졌던 날,

그 위에서 살아남은 건

기획서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습니다.


다음 화 예고

〈협력사와의 관계, 긴장과 협업 사이〉

“단가 협상보다 중요한 건, 관계의 신뢰다.”


본사 실무자 8년 차,

성공보다 ‘구조’를 먼저 고민한 기획자의 이야기.

《기획자의 키친》은 매주 일요일 실전 기획 레시피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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