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는 계약서가 아니라, 태도에서 시작된다
기획자의 세계는 늘 새로운 요리를 시도하는
주방과 닮아 있다.
레시피도 없고, 누가 먼저 했던 일도 없다.
그 속에서 유일한 재료는 사람이고,
관계를 요리하는 방식은 바로 ‘태도’다.
내가 맡았던 브랜드는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한 치킨 프랜차이즈였다.
배달 전문 매장, 포화된 시장, 넘쳐나는 경쟁사들.
‘이 시장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가 가장 큰 숙제였다.
그러다 본사 최초로 새로운 타입의 매장을 기획하게 되었다.
치킨이지만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고, 커피가 중심에 있는 브랜드.
대세가 된 카페 시장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콘셉트였다.
그 매장의 PM, 바로 내가 맡았다.
TF팀이 꾸려졌고, 메뉴 개발부터 공간 설계, 스토리보드까지
내 손을 거치지 않은 건 하나도 없었다.
커피 음료 13종, 일반 음료 11종, 베이커리 26종.
기물, 인테리어, 동선, 패키지, 매뉴얼, 초도 발주 리스트까지.
누구도 해본 적 없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야 했다.
“그건 저희 일이 아닌데요.”
그 과정에서 수많은 협력사들과 부딪혔다.
MOQ 협의, 단가 조율, 납기 일정, 품질 테스트…
하루에도 수차례 연락하고, 수정하고,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죄송하지만, 그건 저희 쪽 업무 범위는 아닙니다.”
“이 조건으로는 거래가 어렵습니다.”
그 말들이 낯설지 않게 들릴 만큼, 관계는 쉽지 않았다.
그럴수록 나는 숫자보다 사람을 봤다.
이해시키는 데 시간을 들였고, 반복적으로 설명했고,
함께 만든다는 태도를 유지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대량 발주를 앞두고, 내 입장에서도 상당한 리스크가 있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협력사 대표님께 조심스럽게 여쭸다.
“대표님, 제가 뭐라고… 이런 거래를 왜 해주시나요?”
그분은 웃으며 말했다.
“나는 당신 눈빛을 믿었습니다.
비전이 보였고, 그 열정이면 결국 해낼 거라고 생각했어요. 당장은 손해더라도, 나는 당신 쪽에 베팅하고 싶었어요.”
그 말을 들으며 느꼈다.
기획자의 말보다, 기획자의 태도와 에너지가 관계를 만든다는 걸.
기획자는 현장에서 수없이 많은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단순한 발주처가 아니라,
브랜드를 함께 만들어가는 파트너로 바라봐야 관계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관계는 단가로 유지되지 않는다.
결과물로 증명하고, 태도로 쌓아야 한다.
그렇게 쌓인 관계는
언젠가 내 제안서보다 먼저,
나를 믿고 함께하겠다는 손길로 돌아온다.
기획자의 말은 곧 브랜드의 온도다
“부탁드립니다.”
“가능하실까요?”
“도움이 필요합니다.”
똑같은 말이어도, 그 말에 담긴 진심은 전해진다.
기획자의 말에는 온도가 있고, 그 온도는 브랜드 전체의 이미지가 된다.
관계는 계약서로 유지되지 않는다.
기획자의 태도가 결국 브랜드의 신뢰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