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를 해독하고 거기에서 얻은 것을 활용하는 일을 하면서부터 오히려 문자들의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듯한 이탈감을 느끼고는 한다. 읽고 써낸 것으로 업적을 쌓아야 하는 상황에 대면하면서 문자만 보면 울렁증이 이는 증상도 생겼다. 그러던 것이 2022년도에는 난독증이라기도 이르기 묘한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초기에는 건망증이 심해진 것으로 생각했다. 집중력이 떨어져서 실수가 잦은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결정적인 몇 번의 실수가 이어지면서부터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듯한 김장감을 느끼게 되었다. 글자가 읽히지 않았다. 문자를 눈에 넣고 있기는 한데 그게 징검다리처럼 눈을 건너갔다. 내가 읽은 것은 분명 글자가 맞는데 머릿속에도 가슴에도 남겨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 듯한 느낌이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처음으로 경험하는 증상이었기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2022년 2월을 기점으로 리셋되어 버린 듯한 인생을 위해 억지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던 마음 때문이었을까. 평소와 다른 나의 눈에 조바심이 났다. 더 많이 읽으려 하면 할수록 어그러지고 일그러지는 문자를 앞에 두고 이대로라면 모든 게 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도무지 앞으로 넘어가지 않는 듯한 책장을 붙들고 씨름하다가 어느 날 문득 놓아버렸다. 쓰는 것도 읽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억지로 하지 않기로 했다. 노력하는 것을 그만두려는 노력을 그때는 놓아버린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하여 뭐라도 쥐고 있고자 하는 마음과 그래서는 안 된다는 두 마음이 내 속에서 대치하게 되었다. 그게 나를 끝없이 지치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나는 내가 뭔가를 내려놓았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일 년을 버텼다.
그러다가 나만의 시간을 가지게 되면서 내가 버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채게 되었다. 급류에 휩쓸려 내려가지 않으려 아득바득 애쓰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여유를 준 시간에 힘입어 나도 모르게 꼭 쥐고 있던 주먹에서 힘을 조금 덜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빈손에 책을 쥘 수 있게 되었다. 조금씩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눈은 문자의 징검다리를 건너며 속독의 나쁜 습관을 반복하고 있다. 회복이 더딘지 아직은 온전히 독서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들쑥날쑥하기는 하지만 책을 조금씩이나마 읽어 나가고 있다. 그렇게 책을 읽으며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불현듯 알게 된 것이 있었다. 책을 많이 보는 사람일수록 독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전공 분야가 생기고 그게 밥벌이가 되어 버리면 전문가가 되기 위한 지난한 연마가 시작된다. 경쟁사회는 그것을 일종의 강박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리하여 여유를 잃은 나는 실무에 필요한 책을 공부하는 책 읽기는 하지만 내 영혼을 살찌울 수 있는 독서로부터는 멀어지게 된다. 한갓지게 독서나 하고 있을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책이건 서류건 전문지식과 관련하여 많이 읽어내야 하는 사람일수록 독서는 하지 않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나에게만 일어나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어주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 상황에 굉장한 위기감을 느끼게도 되었다. 문자를 일그러뜨리는 것을 통해 문자로부터 도망가게 된 것은, 그리하여 독서의 즐거움과 위안을 잃었다는 것을 문자가 부재하는 세상을 거쳐 나와서야 깨우치게 된 나였기 때문이었다.
건조한 문자의 세상에서 끝없이 나를 구원해 준 것은 한갓진 독서였다. 전공과도 취미와도 관계없이, 단순히 문자의 향기와 그것이 그려내는 세상이 그리워서 하는 독서가 나에게는 쉼터였다. 그 쉼터가 긴장하고 있던 어깨를 풀어주었고 굳어 있던 뇌를 부드럽게 해 주었다. 그러한 이완이 내가 다시금 문자의 세상으로 진입할 수 있게 해주는 발판이 되어 주었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세상 사람들이 한갓지다고 하는 일들에서 나는 꽤 많은 위안과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내가 세상으로부터 밀려나지 않게 해 준 것은 소위 전문 분야의 지식일지 모르겠으나 내가 머물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을 구축해 준 것은 한갓진 독서 같은 것들이었다. 천천히 책을 읽어 나가야겠다. 독서를 해야겠다. 책을 읽는 행위로 뇌가 더 딱딱해지기 전에 산소를 공급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