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속 나의 역할이 거울이나 귀 같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불현듯 속을 터놓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만나서일 것이다.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이야기를 들을 때 나는 자주 묻는다. 그때의 기분이 어땠는지, 지금 당시 상황을 생각하면 어떤 느낌이 드는지 같은 것을. 그러면 상대는 한 번도 그런 질문을 받아보지 못한 듯 생각보다 훨씬 더 진솔하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일로부터 일정 정도 벗어나 있다는 뜻일 것이다. 애써 가려둔 상처를 드러내는 과정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상처가 될 수 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아리고 쓰린 기억은 굳이 소환해 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눈감아 버리면 없는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 될 수 있음에도 자연스럽게 당시 상황을 이야기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상처가 아물었다는 뜻일 것이다.
신기하게도 바닥에 떨어져 있던 감정을 손에 쥐고 이야기를 쏟아낸 후의 사람들은 굉장히 환한 얼굴이 된다. 그 과정에서 울기도 하고 표정이 없어지기도 하지만 끝에는 모두 누구 하나 예외 없이 밝아진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이후에는 어쩐지 어색해한다. 그런 일이 잦아지면서 언제부터인가는 누군가 비밀을 털어놓으려고 하면 나도 모르게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된다. 그 순간 나에게 그런 말을 뱉었다는 것은 당시의 나의 쓰임이 그러했다는 것일 것이다. 허니 나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나로서는 다음 상황에 대한 나름의 대비가 필요하다.
속내를 터놓는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에너지를 쏟아내고 후련해진다는 것일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언제나 그럴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 그렇게 입을 열기까지는 사실,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면 왜 솔직했떤 그 순간에서 설명하기 힘든 낯섦과 어색함을 느끼게 되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고서야 알았다. 모두 속을 드러냈다는 그 사실이 아니라 그러한 용기를 낸 자신을 어색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니 살면서 나를 솔직히 드러낼 용기를 낼 기회는 많지 않았다. 솔직해지고 싶었던 순간에도 나는 늘 바쁨에 시달렸던 것 같다. 일상은 빠듯하게 이어지고 있고 그리하여 하루하루를 쳐내는 것만으로 우리는 벅참을 느끼기도 하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내 속을 살펴볼 겨를이 많지 않다.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나 스스로가 그 행위에서 나를 떨어뜨려 놓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속을 터놓는다는 행위 자체가 나의 치부를 들키는 것 같은 무의식적 긴장감을 느끼기도 해서이다.
바쁜 세상이기는 하다. 일이 끝나면 쓰러질 듯 잠들었다가 아침이면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정신없이 업무를 이어간다. 적지 않은 중압감이지만 모두 그 정도는 당연한 듯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하기에 타인에게는 물론 나 자신에게도 느긋하게 여유를 가지고 솔직하게 대면해 볼 시간이 우리에게는 없다.
하지만 인간은 소통을 갈구하기 마련이다. 그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어느 순간 툭 하고 속마음을 쏟아내게 되기도 한다. 말을 하고자 하는 것 속을 내려놓고자 하는 것 그것은 어쩌면 본능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 본능을 막아서는 것은 그만큼 솔직한 모습을 내보인 것으로부터 상처를 받은 적이 많다는 것일 수도 있고, 애초부터 그런 순간 자체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나의 마음을 울리는 어떤 순간이 나의 입을 열게 하였다면 그 순간의 나의 감정에 솔직히 마주볼 수 있으면 좋겠다. 상대가 누구 건 그 상대는 당신을 비춰내는 거울과 귀가 될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고 한 번의 용기는 다음의 용기로 이어질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L'empire des Lumières_René Magritte_1853_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