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를 비축하고 있다. 동굴 속에서 겨울잠을 자는 짐승들처럼 겨울이라는 동굴에 움을 트고 움직이지 않고 있다. 시간이 나면 하고 싶었던 일이 참 많았다. 일주일만 쉬면 말끔하게 예전의 나로 돌아가 열정과 열의를 불태울 것이라는 생각으로 일주일을 보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더니 몸이 늘어지기 시작했고 어느새 뇌는 무감각해졌다.
하고 싶었던 게 많았고 해야 할 것도 많았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사라졌다. 몸은 뭔가를 위해 습관적으로 움직이려고 하고 있는데 마음이 따라주지 않았다. 속에서 외치고 있었다. 그 무엇도 하고 싶지 않다고. 뭔가를 하고 싶지 않다는 감각이 나에게는 없었다. 해야 하는 일은 어떻게 해서건 해내고야 말았고 하지 못할 것 같은 일은 하고 싶다는 마음 자체가 들지 않도록 했기 때문이었다.
하고 싶은데 하기 싫은 아이러니한 마음 가운데 오늘의 내가 있다. 하고 싶은데 하지 않는 것은 결국 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가 될 터. 무엇이 나로 하여금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서 손을 들어버리게 하는 것인지에 관한 해답을 구하지 못한 채, 하고 싶은 일 목록과 해야 할 일 목록을 드문드문 적어 내려가고 있다.
그러는 한편 몇 개의 루틴을 지켜나가며 일상을 이어오고 있다. 물결조차 잠든 것 같은 잔잔한 파도 같은 일상이니 보람도 없고 실망도 없다. 어차피 봄이면 원하지 않아도 예측할 수 없는 생의 파고가 나를 쉼 없이 몰아댈 테니 지금은 이대로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물러나지도 않는 이 물결에 나를 맡겨 두고 있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지금은 세상 사람들이 성취라 말하며 추켜세우는 일들로부터 나를 숨겨 놓았다. 나만의 시간을 어디에서도 방해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손과 손을 맞잡았다가 놓기를 반복하는 것이 살아간다는 것이니 온전히 나만 볼 수 있는 시간은 만들 수 없었다. 무엇이건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일이 하나둘은 꼭꼭 일어났다. 나만의 일이 아니었는데 끝내는 나만의 일인 것처럼 내 손에 쥐어지는 일들이 말이다. 여하간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일어나게 되면 일상의 파장이 달라지게 된다. 그리하여 온전히 내가 아닌 다른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은 질적으로 급격히 줄어들게 된다.
그렇게 시간의 질을 생각하고 있자면 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는 것이 생각보다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멍해지려는 순간이면 잠깐이라도 해야 할 일이 생기고 움직이고 있자면 멍해질 수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오롯한 내가 될 수 있는 물리적 정신적 여유, 그것은 양질의 시간을 담보해 준다. 봄이 오면 다시금 달리기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생존조차 불가능한 상황에 몇 번 대면하면서 용도에 맞춰 생존본능을 꺼내 쓸 수 있게 되었다. 위태로움을 감지하면 그때는 또 그에 맞춰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움직임은 압박감과 함께 그런데도 내가 뭔가를 하고는 있다는 안도감과 위안을 줄 것이다. 해서 앞당겨 만든 걱정으로 오늘의 피로를 더하지 않으려고 한다. 인생은 어떻게 건 흘러가고 있을 것이고 생존본능은 나를 어떤 형태로건 일으켜 세워내 있을 것이다. 나의 본능에 새겨진 내 습관의 힘을 믿고 미리 무엇을 해 두기를 좋아하는 나의 미련한 강박에서도 벗어나 있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이 연습이 강박과 압박으로 인해 잃어버리게 된 인생의 즐거움과 설렘을 되찾아주기를. 그 회복이 나의 가슴을 다시금 설레게 해 주기를.
The Disquieting Muses_Giorgio de Chirico_19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