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이면 떠난다고 했다. 영원히 그곳을 지키고 있을 줄 알았던 강아지에게 머물 수 있는 기간이 한정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고는 서운함을 느꼈다. 오며 가며 만나게 된 강아지이기는 하지만 거의 매일 보다 보니 정이 들었나 보다. 이제 막 이름을 알았는데 3월이면 호두를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벌써 한구석이 빈 것처럼 벌써 쓸쓸하게 느껴진다.
회자정리. 만남 끝에는 이별이 있다고 하였던가. 그것을 모르지 않는데 이별은 어찌할 수 없이 아쉽다. 상황이건 사람이건 뭔가에 익숙해지게 되면 나도 몰게 그 순간이 영원할 것처럼 생각하는 나쁜 버릇 때문이다. 호두를 보며 이곳을 떠나는 날 호두가 나를 꽤 기다리다가 가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들인 정은 비워낼 수가 없기에 이별은 누구에게나 아리다.
이별에 이토록 서툰 내가 오랜 시간 갈망했던 이별이 있다. 나는 이 땅을 떠나고 싶었다. 영영. 떠날 수 있을 시간과 여유가 있을 때는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아 떠나지 못했고 떠나야 한다는 열망이 가득할 때는 여유가 없어 떠나지 못했다. 특정한 업무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일상을 살아내는 일이 나의 시간을 송두리째 내주는 일이라는 것을 실감하지 못했던 나의 선택은 나를 긴 시간 이곳에 붙들어 두고 있다.
버텨냄의 연속이었던 하루하루는 낭떠러지 외길 도로를 곡예하듯 운전해 가는 듯한 아슬아슬함을 선사했었다. 생존은 사람도 일도 업적도 전부 진절머리가 나게 했었다. 떠나버리면 모든 것을 리셋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는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삶의 막막함과 비루함 그리고 처절함을 모르지 않는데도 늘 떠나고 싶었다. 첫사랑을 놓지 못하는 소녀처럼 떠남을 붙들고만 있었던 게 벌써 몇 년이 지났다.
떠나지도 정착하지도 못한 채 내내 부유하는 것 같은 세월을 지나오며 알게 된 것이 있다. 떠남은 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 자만이 이행할 수 있는 결이라는 것이었다. 지금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다 버리고 어딘가로 가 버리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큰 용기와 준비가 필요했다. 그런데 시름과 걱정이 많은 나에게는 그 용기가 없었다.
쫓기듯 사는 데 지쳤던 나는 떠남의 도약을 위한 용기도 떠난 이후의 정착을 위한 여력도 없었다. 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하지 못한 상태로 한 곳을 지키고 있는 사이 나는 나도 모르게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권태와 안일함, 핑계 같은 자기만족에 무의식적으로 길들여져 갔다. 그러다 문득 지금 내가 속해 있는 곳을 나의 일부가 아닌 전부로 받아들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회백색이 되어가고 있는 내 모습에 숨이 끊기는 듯한 허탈감을 느꼈다.
나는 이곳에서 밀려나면 갈 곳이 없어질지 모른다는 불안에 둘러싸여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늘 긴장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실수가 늘었으며 나도 모르게 타인의 눈을 살피고 있었다. 만난 자는 헤어지게 되어 있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일에는 결말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그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 있기 마련이다. 언제 누가 나의 일상을 침해할지 모른다는 불안은 내가 나의 뿌리를 이곳에 한정해 두고 있었기 때문에 느끼는 것일 것이다. 그것은 또한 나의 가능성에 대한 확신과 믿음의 상실에서 느끼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강아지를 떠나보내는 마음도 이토록 아린 것을, 패기 있고 호기로웠던 어제의 나를 떠나보내는 일은 오죽할까. 어제의 나를 떠나보내는 일은, 그리하여 내일을 준비하는 것은 나의 가능성의 상실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쌓음이다. 투명하기 그지없는 시간이 오늘의 쌓음을 내일 당장 보여주지 않을 뿐 언젠가 나의 흔적에 맞는 빛을 만나면 시간은 기필코 내가 공들여 만들어 온 나라는 예술품을 드러내 보여줄 것이다.
멀리서부터 나를 알아채고는 누구보다 반갑게 나를 맞으러 나와주었던 호두와의 이별을 준비한다. 두려움과 슬픔, 절망에 둘러싸여 있던 나와의 결별도 준비한다. 여전히 떠남을 붙들고 있는 내 손을 잡고 말한다. 이제는 떠남에서 손을 놓아도 된다고. 그러면 정말 자유롭게 떠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