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미한 무게 변화가 나의 세상을 바꿀 것이다

by GZ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있는 무엇이 사실은 꽤 애를 써서 성취한 것임을 우리는 자주 망각한다. 두 다리로 온전하게 걸을 수 있는 것, 말을 할 수 있는 것 두 눈으로 뭔가를 볼 수 있는 것 같은 것들을 보통의 우리는 감사해하지 않는다. 그 모든 것에 익숙해지면서 그것은 나에게 응당 주어져야 할 것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뭔가를 골똘히 보면서 시야를 확보하기 어렵게 된 시기가 있었다. 가슴이 내려앉았다. 눈이 고장 나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그러면 긴 시간 뭔가를 쓰고 읽는 행위에서 느끼는 불편이 늘 것이기 때문이었다. 미련한 나는 시간이 너무 없을 때는 눈에서 눈물이 날 정도로 모니터를 보거나 책을 보고 있을 때가 많았다. 억지로라도 눈을 뜨고 있다 보면 눈물은 그쳤고 그래서 안구가 마르면 인공눈물액을 넣으면 됐었다.

그 정도로까지 뭔가를 필사적으로 해야 할 필요가 없는데도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을 나에게 증명해 보일 작정이라도 한 사람처럼 나는 그런 식으로 때로 뭔가를 집요하게 붙들고 늘어지고는 했다. 잠을 줄이고 몸을 혹사하는 것이 내가 정한 ‘열심히’의 척도가 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를 무식하게 그렇게 몰아댔었다. 그때는 그러다가 큰일 난다는 말이 귓전으로도 들어오지 않았다. 나의 몸은 언제까지고 나의 무모한 열정을 받아내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언제까지고 건강하리라는 것을 장담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음을 작년에 몸의 여러 곳이 망가지면서 실감하게 되었다. 몸의 통증은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기분을 가라앉혔다. 애를 써도 좀처럼 원래의 궤도로 돌아오지 않는 몸과 마음 앞에서 도무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나를 둘러싼 여러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할수록 뭔지 모르게 많은 것들이 엉켜버려 내 발에 걸려 내가 넘어지는 듯한 상황이 자주 벌어졌다.

가만히 있으면 나아지려나 해서 가만히 있기를 연습했다. 그랬더니 몸은 가만두고 있는데 머리는 그만큼 더 바빠지는 불가사의한 현상이 일어났다. 그 때문인지 몸과 마음의 불균형이 몸을 움직이는 편이 마음을 더 편하게 해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무리해서 움직이며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이 난관을 돌파할 수 있을까 하고. 어떻게 해야 여유를, 웃음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하고.

원인을 알아야 치료도 가능할 것이기에 나에게 질문을 거듭했다. 최상의 상황과 최악의 상황을 끝없이 가정하여 그 속에서의 나의 대답을 듣는 일을 거듭하는 것은 생각보다 지난하고 힘든 과정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쉽게 마주 볼 수 있는 것이 내 눈이기도 하지만 그러하기에 가장 두렵기도 한 것이 내 눈이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나의 의도나 의지와 상관없이 나에게 무작정 닿은 상황은 때로는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기도 하다. 나의 움직임이 오히려 더 나를 옥죄는 것 같을 때는 거미줄에 걸린 벌레처럼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그럴 때는 그 참에 쉬어간다고 생각하고 거미줄을 녹여줄 구원자를 기다리거나 멈춰 서서 다시 전략을 세우거나 상황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눈을 마련해야 한다. 방법을 안다고 해도 쉬운 것은 없다. 나를 새롭게 리셋하는 과정을 마주하지 않고서는 어디에도 이를 수 없기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상황을 보는 나의 눈을 바꾸면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습을 하기로 했다. 억지로라도 웃고 하루에 한 가지 이상씩에 감사하며 희망적인 내일을 그려 나가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쉽게 절망하고 실망하던 나를 무모하게 꿈꾸고 앞날을 기대하는 나로 바꿔 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걸음마를 다시 배우는 아이처럼 내 속에 형성된 많은 것을 하나씩 무너뜨리고 다시 세워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상황에는 맞지 않으나 한때는 그게 맞다고 생각해 꽤 견고하게 쌓은 나의 성을 무너뜨리는 것은 수월한 작업이 아니었다. 지난날 나의 논리를 부정하는 것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그것은 내가 언제라도 틀릴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나도 그러한 여정의 연장선 속에 있음을 수용하여 앞으로 내가 쌓을 성 또한 다시 허물어야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 속에 새기는 일이기도 했다.

그 성을 구축하기까지의 노고와 고난을 알기에 그대로 관성에 맞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허물고 구축하는 노력을 반복하는 것은 결코 수월한 일이 아니었으므로. 그런데 차마 힘들어하는 나에게서 등을 돌려 설 수가 없었다. 나에게는 나를 지켜내야 할 의무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일어섰다 넘어지기를 반복하던 겨울을 지나 봄을 앞에 두고 있다. 여전히 긴장하고 있기도 하고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그런데 안다. 봄이 오면 나의 몸은 그 계절에 맞춰 움직일 것이고 그 움직임은 전보다 조금은 가벼워져 있을 것이라는 것을. 끝없이 나와 마주해 온 시간의 나와의 대화가 나에게 남긴 그 미미한 무게 변화가 나를 둘러싼 세상을 바꾸어 줄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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