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의 호흡은 한 번의 다짐

by GZ

누군가에게 좋은 기억이 되어 남은 일을 생각한다. 때로는 그것이 나의 존재함을 보증해 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지인으로부터 외국인을 소개받았다.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데 여의치가 않다며 함께 만나서 한국어 공부를 같이 해 보자고 했었다. 당시의 나의 일과는 10시, 11시에 마치기가 다반사여서 사실은 그 친구를 일주일에 한 번 보는 것이 꽤 부담스러웠었다. 만나나 보자는 생각으로 카페에 나갔었는데 그게 1년 동안 이어졌다.

그 외국인 집에 가까운 카페에서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한국어와 영어를 오가며 이야기를 하고 번역도 해 보는 작업을 했었다. 그때는 차가 없어서 수업을 마치고 나면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어야 했다. 귀가하면 새벽 1시가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 친구와의 공부를 마치고 오면 그 이후부터 나의 일이 시작되었다. 6개월 정도가 지나면서는 체력적으로도 한계에 이르러 이렇게까지 무리해서 해야 할 일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나는 왜 나의 시간과 돈을 들여서까지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답은 간단했다.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으니까 일정 시간 동안은 나와의 약속을 지켜보자는 마음이 컸던 것이었다. 1년이 조금 넘게 그 친구와의 야간 한국어 공부를 이어왔다. 이후 다른 일을 하게 되면서 도무지 시간을 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 친구와의 한국어 공부는 끝나게 되었다.

우리가 주로 한 작업은 한국어 시를 영어로 번역해 보고 한국어를 읽는 것이었다. 번역 작업은 내가 주로 하던 일이라 노동의 강도는 세지 않았다. 그렇다면 재미가 느껴졌어야 하는데 내가 번역해 온 다른 작업에 비하면 접근이 상대적으로 쉬워서 성취감이나 재미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그 친구가 호기심을 가지고 한국 시에 접근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꽤 흥미로웠다.

약간의 의무감과 정의감으로 이어 온 그 일이 그 친구에게 힐링의 시간이 되고 있었다는 것을 그 친구가 가족 중 한 사람을 잃고 난 후에 알게 되었다. 부고를 알리며 그 친구가 나에게 남긴 메시지 중에 그때 우리가 시를 번역하며 느꼈던 감정이 건조해져 있던 그 당시의 그에게는 빛이 되어 주었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지치고 힘들 때마다 떠올리게 되었던 함께 번역한 시 속 벚꽃이 그에게는 꽤 큰 위로가 되어 주었다고 했다. 그 말 때문인지 장례식장에서 벚꽃 날리는 봄 풍경을 떠올리고 있는 그 친구가 그려졌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그 순간 한국시를 떠올리며 쓸쓸함을 덜어내고 있는 그 친구의 모습이 어쩐지 너무 눈물겨웠던 한편 조금은 무심하게 나의 의무를 다한다는 마음으로 그 친구와의 시간을 마주해 온 것이 미안하기도 했다.

자주 이런 말을 듣는다. 그렇게까지 온 마음을 다해서 모든 일에 마주해야 할 필요가 있냐고. 적당히 좀 하라고. 그래서 나에게는 적당히,라는 말이 콤플렉스가 되어 있다. 내 기준에서는 적당히 하는 것 같은데도 그것조차 심하다는 말을 자주 들으니 때로는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도 된다. 그래서 딴에는 거절을 하고 적당히 하는 것을 연습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었던 것도 같다.

성실하기는 했으나 조금 더 마음을 담지 못했던 그 1년이 나에게는 어쩐지 아쉬움으로 남아 있었던 것 같다. 마음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 일은 나도 모르게 자꾸 뒤돌아보게 되는데, 지금도 그때를 종종 뒤돌아보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나로서는 조금 더 따뜻하지 못해 아쉬웠던 그 시간이 그에게는 한국에서의 힘든 날들을 버티는 한 줄기 빛이 되어 주었다는 말을 곱씹는다. 생존이 급급하여 일을 쳐내기에 바빴던 날들을 떠나보내고 다시금 원래의 나로 돌아가 아니, 본래의 나에게서 조금은 업그레이드된 나로 2023년의 새 시작 앞에 선다. 한 번의 호흡은 한 번의 다짐일 것이다. 심기일전(心機一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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