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내가 생각하는 대로 날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

by GZ


그러니까 네가 내가 생각하는 대로 나를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 이게 진심이었다. 내가 완벽한 것도 아닌데 상대에게서 상대가 나라는 사람을 꽤 괜찮은 인간으로 받아들여 주었으면 하는 기대가 우리에게는 내심 있다. 그런데 나도 상대를 그렇게 받아들일 수 없음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상대도 그러할 수밖에 없음을 수용하게 된다. 그런데도 어쩐지 모를 기대는 상대가 나를 오해하기보다는 이해해 주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그리하여 나에게 어떤 곤란한 상황이 생길 때면 때로는 돈키호테처럼 나서 주기도 하고 내가 목소리를 높여 싸울 때면 무조건 내 편이 되어 서 주기도 했으면 하는 기대를 하게 된다. 그게 그가 확실히 내 편이라는 표식 같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군가가 나를 위해서 한 일이 결정적인 해결책이 되어 준 적은 그렇지 많지 않음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때로는 나를 위한다는 그 일이 나를 더 곤란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 또한 모르지 않는다. 그런데도 홀로 싸워야 할 때 또는 세상에 내 편이 아무도 없다는 생각일 들 때면 나도 모르는 기대가 은근슬쩍 기대의 고개를 내민다. 그런 순간, 어렸을 때는 나의 절친이 내 편에 서 주지 않거나 내가 곤란할 때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으면 서운하다고 직접 말하거나 싸우기도 했는데 어른이 되면서는 그런 일이 잘 없다.

표면적으로는 상대의 삶의 방식과 인생관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서 그렇다는 것이 이유다. 하지만 사실은 유치해지고 싶지 않기도 하고 무엇보다 머리로는 받아들일 수 있는데 마음으로는 서운해지는 상황을 마주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그에 맞는 각 개인의 판단을 존중하고 인정해 주는 것을 어른이 되는 것이라 배웠다. 나 또한 그에 수긍하고 있는데도 어쩐지 내가 친하다고 생각한 누군가가 나의 편에 서 주지 않거나 내 속마음을 알아서 척척 알아주지 않는 것 같을 때는 서운함을 느낀다.

솔직하게 내 마음을 하나하나 열거하자니 나조차 군색한 내 마음이 초라해 보여 뭐라고 툭 터놓고 말할 수 없다. 그리하여 모든 것이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조금은 감정의 촉수를 둔하게 만들어 놓는다. 그러면 서운해하는 내 마음으로 인해 내가 초라해지는 것 같은 나로부터의 소외감을 무디게 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상황을 다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눈이 하나씩 만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각도의 시각을 예민하게 만들어 두는 것은 나를 나의 시선에만 매몰시켜 두지 않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누군가가 놓치고 있는 것을 알아채 주기 위함이기도 하다. 서운함을 느끼게 되는 때는 때로 지금의 그 상황은 상대는 나를 위해 움직이고 있으나 어쩌면 내가 나의 상황을 정확하게 바라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하지 않다고 해도 내가 그렇다고 생각해 버리면 괜한 서운함으로 인한 속의 부대낌을 덜어낼 수 있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해도 나의 세상만큼은 나를 중심으로 움직이게 만들어 둘 권리와 필요가 나에게는 있으니, 때로는 그렇게 나의 상황에 긍정을 덧씌워 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조금은 무모할지라도 말이다.

gustav_klimt_-_portrait_of_marie_henneberg_1901-1902.jpg.jpg Portrait of Marie Henneberg_G Klimt_1901_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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