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한 투명하게

by GZ

에세이를 쓰는 감을 잃으면서 겁이 났었다. 작년 한 해 에세이라고 할만한 글을 남긴 기억이 없었다. 뭔가를 끝없이 쓰기는 했는데 어딘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후다닥 쓰고 도망가 버렸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했던 것 같다. 그래서 글의 종류라고 할 것도 없이 단순한 기록이 되어 남은 문자의 조각이 많았다. 그것이라도 하지 않으면 나의 정체성이 사라질 것 같아 당시에는 딴에는 절박하게 손을 움직였었다. 그게 나를 끝없이 소진시키는 일임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렇게라도 했기에 문자로부터의 멀미를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쓰는 것도 지워지는 것도 아닌 그 상태를 마주하는 것이 꽤 힘들었던 것 같다.

글을 쓰는 힘이 뼈도 근육도 없는, 지방질만 되어 남겨진 것 같은 느낌에 무감각해져 있던 어느 날 다시 단련을 시작하기로 했다. 대단한 결의를 한 것은 아니고 문자로 나를 구축하는 행위는 숨 쉬는 것과 같은 것이었으니까 그 작업을 이어가고자 한 것이었다. 첫걸음마를 시작하는 아이처럼 새롭게 마음을 고쳐먹고 가능하면 하루에 한 편의 글을 남기기로 했다. 머릿속 생각을 정리한다는 생각조차 버리고 마음이 지향하는 바와 가슴에 담긴 바를 뱉어내는 행위에 충실해 보자는 생각으로 쓰기 시작했다. 하다가 피곤하면 그만두자는 생각으로 말이다.

그러면서도 하다가 그만두는 일은 목표한 분량이 채워지기 전에는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성격적인 결함인지 모르겠지만 마음먹으면 해 버리고 마는 나의 고집스러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일기를 쓰듯이 머리와 가슴을 채운 뭔가를 하얀 화면 위에 내놓고 나면 나를 둘러싸고 있던 어떤 떨림이 조금 진정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요 몇 년 사이 내가 여러 미디어를 통해 느끼는 피로감이었다. 여러 매체를 통해 거의 실시간으로 세상의 직조 방식이랄까 운영 방식을 들여다보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어쩐지 나만 빼고 모두 화려해 보이는 여러 기록을 보자면 자극을 받는 한편 나도 모르는 피로감을 꽤 많이 느꼈다.

나라는 사람을 내보여야 세상과의 소통이 가능해진 시대라니 콘텐츠의 폭발은 막을 수 없는 사회 흐름일진 데 왜 그 흐름에 순응하지 못하고 이토록 엄청난 피로감을 느끼는지 알 수 없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나도 모르는 소외감과 강박을 느낀 것 같다. 창작으로 밥벌이를 하기 위해서는 나를 위한 영업사원이 되어 백방으로 뛰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듣기도 했고 나의 주변에서도 그러한 사람을 많이 보았다. 그런데도 나는 어째 그런 흐름에 편승하지 못하는 것 같은 것이 어쩐지 스스로가 게을러 보이기도 했고 뒤처져 보이기도 했다.

나는 뭔가를 위해 작위적으로 결과를 내는 일에 서툴다. 세상이 원하는 방식으로 뭔가를 하려고 하면 어쩐지 모를 어색함이 느껴져 그러한 시도를 한다고 해도 과정에서도 결과에서도 어긋나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이생에서는 뭔가를 성취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떤 결과도 결실도 내지 못하는 이 무의미한 글쓰기 같은 것은 그만두고 소위 이 사회가 말하는 가시적일 결실을 보일 수 있는 일에 더 집중하는 것이 맞았다.

그런데도 정말이지 이상하게 내가 벼랑 끝에 섰을 것 같을 때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잡을 수 없을 것 같았을 때면 나는 늘 글로 돌아왔다. 수도하는 사람처럼, 물론 종일 토굴에 앉아 종일 한마디 말도 없이 수행하는 분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여하간 그 자라로 돌아와 앉아 전과 다름없이 하던 일을 되풀이하고 있다. 긴 글을 쓰는 호흡까지는 완전히 회복한 것은 아니지만 여하간 매일 꾸준히 뭔가를 쓰는 동력은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

다만 걱정이 되는 것은 나와의 소통을 위해, 그리고 나에게서 말을 잃은 나를 위해 문자를 남기는 이 행위가 그러지 않아도 넘쳐나는 콘텐츠 세상에 잉여물을 남기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업무 태만을 하고 있지 않고 움직이고는 있다는 나에게 남기는 가시적인 행위이기도 하고 나름은 다음을 기약하기 위해 근육을 만들어가는 행위이기도 한데 어쩐지 모를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내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설명하기 힘든 불안을 완전히 잠재우지는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여하간 그러한 생각 속에서 늘 생각한다. 뭔가를 글로 남기는 행위에 있어서 만큼은 가능한 최대한 투명해져 보자고. 숨을 쉬는 것이 목적을 가지고 하는 일이 아니듯 나에게 있어 글을 쓰는 것 또한 그런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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