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뿐이다. 오해를 해야 내가 덜 다칠 것이기에 때로 인간은 나를 보호하기 위한 방패로 오해를 의도적으로 사용해 버리기도 한다. 오해를 방패로 세워두면 생각보다 사람을 대하는 것이 굉장히 편해진다. 나의 감정이 소진되는 상황을 더 만들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표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으나 수면 아래 도사리고 있는 갈등이나 서운함까지 없는 것처럼 보여 나는 꽤 쿨한 사람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이해하지 않으려는 시도를 무의식적으로 꽤 많이 시도한다. 서운함을 토로하고 일일이 시시비비를 따져 들며 나 자신을 상황이나 사람에 관해 납득시키는 과정으로 소진되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오해로 상대를 정리해 두면 그것은 상대가 나에게 더는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구실이 되어 준다. 사실은 내가 그 상황을 곡해하고 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감정에 날이 섰다는 것 자체가 그 사실을 증명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어떠한 일로 인해 내가 끝없이 나의 감정을 캐묻고 상대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마주하기 싫어 아니, 그것보다 일단은 상처받기 싫어 속단해 버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나의 나쁜 습관과 방어기제가 순간적인 판단으로 상대를 매도해 버리는 것일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입장과 생각은 따로 있다. 그 누구의 생각도 틀린 것이 될 수는 없다. 그러니까 나와 다르다는 것이 그 상대를 한쪽으로 몰아가 매도해 버릴 수 있는 이유는 될 수 없다. 나의 지향은 타인의 지향이 될 수 없고 타인의 지향은 나의 지향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꽤 자주 나와 다른 방향을 본다는 것을 이유로, 상대가 내가 원하는 방식의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로 누군가를 ‘어떠어떠한 사람’으로 몰아가 버리는 경우를 보아왔다. 그 판단 속에 상대가 그러한 판단을 내리고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나의 기분이 상한 것이 불쾌하고 나의 믿음에 그런 식으로 밖에 대응하지 못하는 상대의 행동이 서운하기에 어떤 식으로 건 그 상황을 빨리 정리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 섣부르게 A는 B라는 식의 결론을 내려버리는 것이다.
그리고는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나 상황을 회색지대 어딘가로 몰아가 버린다. 최대한 그 사람을 나에게서 멀리 두어야 그에게 나에 가까이 올 여지를 더 주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판단하고 행동하여 나의 마음이 편해진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사는 갈등의 연속일 수밖에 없으므로 누군가를 잃고 얻는 것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하여 어떤 식으로 건 그것을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기는 하다. 그리고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러한 정리는 때로는 내 성장의 자극원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사이 우리가 잃게 되는 것이 하나 더 있음을 우리는 인지하지 못한다. 나의 속단속결이 소위 쓸모없는 인맥을 잘라내는 데는 유용한 검으로 사용될 수는 있으나 그게 상대만 잘라내는 것이 아니라 나 또한 잘라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멋대로 판단하고 관계를 규정해 버리는 것은 상대를 잃는 것일 수도 있지만 실은 나를 잃는 것일 수도 있다. 재고해 보지 않고 성급하게 본능적인 감각에만 의지해 정리해 버리는 편협한 관계가 늘어가는 것은 내가 그만큼 마음을 다쳐서인지 아니면 내가 그만큼 나를 해해서인지. 언제나 그렇듯 인생에서 누군가와 관계를 맺어간다는 것은 큰 난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