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육계 줄행랑

by GZ


새로운 일을 앞두고 며칠 속을 끓이고 있다. 시간이 가면 해결될 일이라는 것을 아는데도 그 시간이 얼른 나에게 닿지 않아서 안달복달 중이다.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아 최대한 그 시간이 늦게 오기를 바라면서도 빨리 다 지나가 버리면 좋겠다는 양가의 마음이 내 속에서 널뛰기를 한다. 그래서인지 충치 치료를 앞둔 아이처럼 초조해하고 불안해하고 있다.

충치에 있어 변하지 않는 사실은 그대로 두면 고통은 더 심해진다는 것이고 치료를 받으면 아픔은 있겠으나 그 모든 것이 끝나면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충치에 있어서 만큼은 치료를 받는 것이라는 정해진 답이 있다. 충치가 있는 것도 아닌데 치통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처럼 끙끙 속앓이를 하고 있다. 새롭게 마주해야 하는 낯선 환경이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해야 할 여러 일을 앞두고 이 일을 어찌하나 하고 있다가 오늘 문득 뭔가가 툭 끊어지는 것 같은 해방감을 느꼈다. 전략상 후퇴라는 손자병법의 마지막 계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못 하겠으면 못 하겠다고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한 번도 어떤 일을 중도에 그만둬 본 적이 없기에 시작한 일은 마무리해야 하고 아무리 힘들어도 무조건 견뎌내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살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습관처럼 견뎌내려 안간힘을 쓰다가 알아챘다. 선수들에게는 링 위에서 수건을 던질 선택권이 주어져 있다는 것을 말이다.

싸워보지도 않고 수건을 던지는 것은 경기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기에, 준비의 시간을 제로로 만들어버리기에 나 자신을 배신하지 않기 위해 일단 뛰어본다는 생각으로 링을 앞두고 있다. 링을 올려다보며 시합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터질 것 같다. 그러니까 지금의 이런 나에게 필요한 것은 극도의 긴장감 속에 초조해하고 있는 나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엄격함이 아니라 나는, 나만큼은 내가 도망갈 수 있는 도피처가 되어 주고 있다는 응원이다.

손자병법의 마지막 병법은 도망가는 것이다. 전략상 후퇴다. 그런데도 나는 한 번도 손자병법의 삼십육계인 퇴보 전략을 택해본 적이 없다. 내가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견뎠고 그래서 결국에는 전소되어 다시 일어서기까지 엄청난 시간이 걸린 적이 적지 않았다. 그게 나의 삶의 방식이었기에 이번에도 그러한 각오로 링 앞에 섰다. 겨우 내내 충전한 뱃심을 뽐내면서 말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초조함 속에 새로운 일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일이 힘에 부쳤다. 물러선 적이 없는 내가 물러섬을 가정해 보고 있을 만큼 말이다.

물러섬을 떠올리며 알게 되었다. 내가 힘든 상황 앞에서 상황의 편에 섰지, 나의 편에 서지는 않았다는 것을. 그게 나를 단련시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었다는 것을. 물론 그리하여 나는 단단해졌다. 그런데 그사이 잊고 있었다. 나마저 나를 안아주지 않으면, 그렇게 끝없이 나를 몰아붙이기만 하면 내가 갈 곳이 사라진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나를 향해 두 팔을 열어 두기로 했다. 너무 힘들면 수건을 던져도 된다고 말해주기로 했다. 한 번도 그러한 결정을 내린 적이 없기에 혹여 내가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된다면 그 상황은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견딜 수 없는 것일 것이고 그렇게 미련하게 견디고 있는 것이 언젠가 나를 부서뜨려 버릴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 자신이 나의 도피처가 되어줄 수도 있다는 것이 묘한 위안을 안겨주었다. 그 속에서 나는 확신했다. 이번에도 나는 내가 마주하고 있는 이 공포를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멋지게 넘어서리라는 것을. 시간이 지나 이 유령 같은 공포를 기쁨과 성취의 거름으로 쓰고 있으리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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