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를 알면서 도전을 해야 하는 아니, 도전을 수락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패배를 통해 이를 수 있는 도달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사실은 하고 싶지 않다. 피해버리고 싶고 돌아서 버리고 싶다. 더는 서툰 나를 마주 대할 자신이 없기도 하고 다시금 뭔가를 붙들고 아득바득 애를 써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 시작도 하지 않은 나를 지치게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시행착오를 구실로 패배라는 결과가 정해져 있다고 해도 도전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습관처럼 도전하고 쓰러지기를 반복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결과가 담보되지 않은 도전 앞에 몸을 사리게 되었다. 아프지 않고 고독하지 않은 실패는 없고 실패가 남기는 것이 때로는 소진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피해버리면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오는데도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해져 버리는 것이다.
더는 의미 없이 또 무모하게 다치고 싶지 않은 얍삽한 마음 때문인지 몰라도 승산이 없는 싸움을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고개를 드는 것을 느낀다. 단련된다고 해도 실패의 도장을 받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내쳐지는 것 같은 느낌을 어쩔 수 없이 남기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게 반복되면 실패 자체가 정체성이 되기도 하는데 그러면 하고 싶지 않은 도전 앞에서는 단호하게 거부 선언을 하면 되는데 그건 어쩐지 좀처럼 잘되지 않는다. 나의 가능성을 온전히 믿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무엇을 얼마나 해 낼 수 있는지를 확신하지 못하게 되면서 성공 신화에 대한 환상도 깨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고민할 시간에 움직이라거나 불평하지 말고 일단 움직이고 보라거나 하루에 세 시간 이상을 자 본 적이 없다거나 휴일 없이 살아 이루었다는 성공 신화를 듣고 내가 느끼는 것은 열정과 열의가 아니라 피로다. 나도 다 해 봤는데 나에게서는 신화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성공 신화를 담보로 한 무모한 열정이 실은 피를 말리는 고문관이기도 하다는 것까지 경험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멍하니 있는 데서 느꼈던 평온함을 불안으로 대체하게 되는 마음 병을 앓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몇 편의 신화를 쓰고도 남았을 테지만 여하 간의 사정으로 원하는 때에 원하는 신화를 남기고 있지 못한 수많은 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나는 당신들과 다르게 시련을 넘어서서 이 자리에 이르렀다는 성공 신화가 아니라 ‘애썼다, 어쨌건 해 냈으니까 한숨 돌려도 된다, 다음이라고 편하지는 않겠지만 이 험로도 넘어서 왔으니 다음도 어떻게 건 헤쳐 나가게 될 것이다’라는 토닥임의 말일지도 모른다.
성공 신화에 이르지 못한 옹색함 때문인지 신화에는 영웅이 있고 영웅의 탄생은 영웅이지 않은 이들이 소외감을 느끼게 한다. 거대 서사를 품은 건국 신화와 같은 거창한 신화를 잃고 신화가 개인에게서 탄생하고 있는 가능성의 세계에 이른 것에 감사를 해야 하는 것인지 애석함을 표해야 하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화려한 신화의 만들어진 후광을 보며 어쩐지 시대의 신하가 되어 가는 느낌을 느끼는 나뿐인지 아니면 모두 만들어진 신화의 허상 앞에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불편함을 느끼면서 의례적으로 손뼉 쳐 주고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숨이 꼴딱 넘어갈 것 같은 오늘 하루를 무사히 넘기며 오늘도 잘 버텼다며 내 등을 토닥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 나의 신화가 초라해 보이는 것은 세상의 신화가 참으로 화려하고 거창하기 때문일 것이다. 볼거리가 많아 심심하지는 않으나 나처럼 심심한 것이 취향인 사람에게 이 시대의 신화는 너무 자극적이고 피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