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린 계절을 지나 따뜻한 날에 이른 꽃이 눈부신 날들의 흔적을 눈물처럼 남겨두고 떠나고 있다. 이른 헤어짐이 아쉬워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떨어진 꽃잎 하나를 집어 든다. 이 꽃을 보기 위해 시린 겨울을 고요히 인내해 온 이들의 시간이 손끝에서 일렁인다. 바람에 팔랑거리는 꽃잎의 움직임이 인내의 요정들의 속삭임이 되어 가슴에 닿는다. 꽃잎을 움켜쥐며 중얼거린다. 또 한 계절을 지나 봄에 이르렀다고.
바람을 타고 먼먼 어딘가로 떠나고 있는 꽃잎의 춤사위를 본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인다. 날리는 꽃잎이 지나온 시간의 길목마다 놓인 지난날 이야기들이 되살려 내는 까닭이다. 이렇다 할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닌데 꽃잎을 쥐고 눈시울을 적시고 있다. 아마도 시간이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아갈 나이에 이르렀기 때문일 것이다.
꽃잎 한 장을 더 집어 든다. 그리고는 생각한다. 바닥에 떨어진 모든 꽃잎이 봄의 몸부림이라고. 몸부림치는 모든 것은 저마다의 빛을 발하기 마련이라고. 찬란한 그 빛이 눈에 닿아 차마 떨어지지 못하고 눈에 맺혀만 있던 눈물을 흘러내리게 한다. 눈물이 꽃잎에 닿아 시간의 파문을 일으킨다. 봄에 겨울이 닿아 손 위에서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파도가 되어 일렁이는 꽃잎에 둘러싸여 중얼거린다. 시린 계절이 있기에 꽃비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고.
꽃 진 자리에서 돋아나기 시작한 새싹을 본다. 새싹의 몸부림에서 봄의 도래를 느낀다. 하얗고 푸른 봄이다. 허연 봄이 초록빛 옷으로 갈아입을 채비를 마치고 여름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는 시간이다. 사방이 이토록 눈부시게 밝은데 어둠을 짊어지고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찬 서리 찬바람을 맞으며 두 계절을 지나와 몽우리를 틔운 봄이니 봄이 서둘러 이별을 고해 온다고 하여 결별을 슬퍼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리움은 슬픔과 아픔을 남길 테지만 그리워할 대상이 있다는 것은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때로 기다림은 그 자체로 선물일 수 있다.
봄이 왔는데 눈물이 흐른다. 하릴없이 눈물이 나는 것은 어쩌면 봄이 그리고 그 봄을 기다려온 시간이 너무 눈부시기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