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보통 여가에 무엇을 할까 하고 떠올려 본다. 영화를 보거나 유튜브를 보거나 쇼핑을 한다고들 하던데 나에게는 그게 여가를 즐기는 한 방식이 되지 못한다. 일단 쇼핑은 피로하여 거의 하지 않는 편이고 유튜브나 영화 등 내용이 있는 그 무엇은 어쩔 수 없이 머리가 자꾸 회전하여 활용하려고 하기 때문에 쉼이 되지 못한다. 책을 읽거나 그림을 보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큰 여가 활동인데 한동안 난독증 때문에 책은 읽지 못했고 전시회는 감흥을 느끼지 못하게 되면서 여가를 어떻게 누려야 하는지를 잊어버리게 되었다. 대신 그 자리는 불안과 초조가 자리 잡았다.
하루에 세 시간을 자도 모자랄 정도로 일이 빠듯하게 밀려들면서 쉬고 싶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정작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쉬지를 못했다. 뭔가를 해야 할 것만 같았고 뭔가를 붙들고 있어야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모처럼 시간이 났으니까 일이 아닌 일종의 취미 형태의 뭔가를 하려고 하면 다음 일이 생각이 나서 도무지 집중할 수 없었다. 빠듯하게 뭔가를 하는 것이 아닌데도 쉴 수 없는 상황이 꽤 자주 발생했다.
진심으로 쉬고 싶은데 왜인지 끝없이 불안을 느꼈다. 그러다 보니 쉬는 게 무엇인가 하는 감각까지 사라져 버린 것 같은 것이 시간과 강박의 덫에 걸린 것 같았다. 그도 그러할 것이 예전에는 틈을 내서 하는 일들이 나를 기쁘게 해 주었는데 지금은 그 느낌이 사라져 버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쁘지도 않았고 행복하지도 않았다. 대체 어디에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전에는 멍하니 바다 앞에서 주저리주저리 잘 쓰기도 했는데 이제는 애써 바다를 찾아 그 앞에 앉아 있으면 빨리 일을 해야 할 것만 같은 강박을 느낀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갈 수 있던 나의 바다를 대체 누구에게 빼앗겨 버린 것인지. 거기에 잃어버린 것이 하나 더 있다. 일기장이다. 마음의 여유를 잃으면서 일기가 아닌 일지로 연명해 나왔기 때문인지 이제는 일기를 쓰는 감각도 사라졌다.
일기라는 것이 펜만 들면 술술 마음이 나올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마음을 두드리고 들어가는 평소의 연습이 없으면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인데도 겉도는 말만 나온다. 내 속을 드러내는 일도 그만큼 공을 들여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대체 무엇을 위해 나에게 소중했던 것들을 이렇게 허무하게 잃어버렸는지 생각해 본다. 그 자리에 일이 놓여 있다. 남루한 명함이 있고 조각난 일상이 있다. 그게 사회적 동물로 살아남는 길이겠지. 그 길에 들어서기를 타협한 것이니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생존을 위한 희생을 치러야겠지.
다들 그런 것에 익숙해져 사는데 나는 왜 이 일상이 미치도록 갑갑한지 모르겠다. 그 답답함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와 무작정 도로를 달려 바다를 찾게 되는지 모르겠다. 바다 앞에 앉아 있어도 내 속은 속내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데도 말이다. 아마 달리는 그 순간만큼은 불안이 덜어지니까 움직이고 있다는 그 감각이 원하는 일을 하지 않고 있는다는 데서 오는 강박과 부채감을 덜 느끼게 해 주니까 그런 것 같다.
시간이 조각나니 하고자 했던 것들에 집중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기지 않고 아득바득 시간을 만들어내면 그것을 해서 무엇하나 하는 허탈감이 들고 그런데도 억지로 뭐라도 하고 나면 성취감이 아닌 불안이 덜어지는 느낌이 드는 게 정상이 아닌 것인지 아니면 모두 이러고 사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쫓기듯 쉬는 것 말고 진짜 쉬는 것을 하고 싶다. 하고 싶었던 것들을 되찾고 싶고 하고 싶었던 것들에 대한 열의를 되찾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