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찾아들기 시작한 것이 한 달을 넘기고 있다. 숲에 안겨 있으면 끝없이 드럼을 두들겨대고 있는 듯한 가슴속 울림이 조금은 안정될 것 같아서 천천히 숲을, 매일 꾸준히 걷기로 하고 꽤 진중하게 그 약속을 지켜오고 있다. 숲을 걸으면서 그에게 말을 건다. 신령한 숲의 정령이 내 말에 꾹꾹 눌러 담은 사랑을 있는 그대로 그에게 전해주기를 바라며. 아니, 있는 그대로 보다 더 아름답고 풍성하게 그에게 전해주어 그가 언제 어디에 있건 나의 사랑 안에서 평온할 수 있기를 바라며 말이다.
비가 잦다. 멎지 않고 내내 내리던 비는 어느새 격렬해져 버렸다. 산에는 물길이 새로 생겼다. 물은 골마다 맺혀 폭포가 되어 흐른다. 매미 소리마저 묻어버릴 정도로 우렁찬 빗소리가 숲을 감싸고 있다. 비와 폭포가 만들어내는 소리의 굴이 여름이 더디 가고 있음을 알려온다. 발은 무겁고 몸은 축축하고 눈에는 왜인지 눈물이 차올라 있다.
비를 피해 절간에 앉아 멍하니 빗소리를 듣고 있다. 소리는 들리는데 앞은 보이지 않는다. 사방이 녹음으로 가득했는데 내 눈앞은 까마득해져 간다. 빗소리가 그의 울음소리처럼 들렸기 때문일까. 홀로 몰래 울고 있을지 모를 그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간밤에 그에게 전한 한 구절 한 구절인 매가 되어 가슴을 친다.
나의 글은 손의 움직임에 따른 것이라 머리가 아닌 가슴의 이야기를 담고 있을 때가 많다. 그리하여 때로는 나조차 알아채지 못하고 있던 내 속의 포효가 되어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숨 쉬는 것처럼 고요하고 잔잔하게 종이를 채우기도 한다. 지난밤, 그에 대한 그리움을 껴안고 바다 앞 빗속에서 버려진 짐승처럼 꺼이꺼이 울다가 숨기고 있던 속내를 나도 모르게 전해버리고 말았다. 빗방울이 굵어져서인지 파도가 격해져서인지 그가 걱정할까 봐 그리하여 내가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아파하고 울고 있다는 것을 들킬까 봐 참고 참았던 말들이 바닷바람에 실려 그에게 전해졌다. 마음을 전하고 나니 나의 말이 아픔이 되어 닿지는 않았을까 그가 놀라지는 않았을까 조금만 더 참을 걸 하는 후회가 일었다.
사랑이 깊어지면 행복만 더해질 줄만 알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은 깊어진 만큼 괴로움과 상실감도 더해갔었다. 나는 소리 내 울었고 그는 소리를 삼키며 울었다. 소리가 들리지 않았기에 우는 그가 보이지 않았기에 그는 눈물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 떨어져 있어야 해서 보고 싶을 때 당장 볼 수 없는 현실로 인해 내 눈은 멀고 속은 다 헐어버렸는데 그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내가 더 좋아하니까 마음 아파하는 쪽도 늘 내 쪽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어쩐지 마음이 아렸다.
책임감으로 똘똘 뭉쳐 있는 사람이니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게 습관이 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나는 나를 무너지게 만들어 버린 이 사랑 앞에 덤덤하기만 한 그에게 나도 모르는 서운함을 느꼈다. 사랑만 보느라 아무것도 못 하게 된 나와는 다르게 사랑과 일의 균형을 잡아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그에게 감사해야 하는데 나는 그게 어쩐지 나에 대한 그의 사랑이 깊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울게 될 때가 많았다.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는 사랑은 힘이 든다. 그래서 사실은 자주 지친다. 그러니 한 사람이라도 균형을 잡고 있어야 사랑을 잘 지켜낼 수 있다. 그 일을 그가 죽을힘을 다해 해 주고 있음을 알고 있음에도 서운함을 느끼는 내 모습이 너무 어리석어 보였다. 다른 데서는 어른인 척 잘하면서 사랑에 빠진 나는 왜 어른이 되지 못하는지, 그리하여 때때로 그를 아프게 하는 말을 나도 모르게 전해버리게 되는지 몰라 밤새 울었다. 아닌 척 괜찮은 척하면 되는데 그에게서는 그게 잘 안된다. 나를 온통 뒤흔들어 버린 이 사랑이, 사랑이 시작됨과 동시에 나조차 낯선 새로운 누군가를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나만 그의 사랑이 고파 우는 줄 알았다. 나만 그의 사랑을 갈구하는 것 같았다. 나만 조바심 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애가 탔다. 밤새 홀로 울며 그의 모니터에 남겨진 눈물을 보고 그의 가슴이 헐어 있는 것을 뒤늦게 알아챘다. 내가 놀랄까 봐, 나를 더 기다리게 해야 하는 것이 미안해서 나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 나에게 차마 전하지 못한 그의 말이 그의 눈물에 실려 나에게 닿았다.
이토록 사랑하는 마음이 깊은데,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아플 정도로 사랑하는 그 사람을 나는 왜 때로 힘들게 하는 것일까 하는 괴로움에 또 밤을 지새우고 말았다. 그도 나도 괴롭지 않으려면 이 사랑을 놓으면 되는데 우리는 눈물로 홀로 밤을 지새우면서도 그러지를 못했다. 손이 헐도록 꼭 쥐고 있는 이 사랑만 놓으면 되는데 왜 그것을 못 하는지 그래서 그를 이토록 괴롭게 하는지 알 수 없어 나는 오늘 또 그에게 그가 싫어하는, 미안하다는 말을 나 때문이라는 말을 전하고 말았다.
그는 조용히 눈물 흘리는 내 머리를 매만지며 말했다.
뜨거운 괴로움 속에 차가운 아픔이 있고 그 속에 따스한 사랑이 있어.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사랑이 깃들어 있는 괴로움을 발견하고 그 뜨거운 괴로움에 손을 대서 따뜻한 사랑을 꺼내 상대의 마음속에 온기를 전하고자 하는 용기를 기꺼이 낸 사람들이야. 그러니까 내가 괴로운 것은 너의 말 때문이 아니라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야.
가슴에 손을 덧대며 비를 본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격렬하게 쏟아지는 빗 속에서 다시 나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바라 이 비를 뚫고 산을 찾아 들어왔을까. 숲은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전해주려 새벽부터 나를 불러들인 걸까.
바람 사이에 놓인 비가 슬픔을 그려내고 있다. 빗속에서 슬픔을 읽어내고 있다. 내 사랑이 슬프기 때문이 아니라 쏟아지는 빗속에서 내가 길을 잃지 않도록 내 손을 꼭 잡아주고 있는 그의 손에 담긴 사랑의 온기가 너무 따뜻해서이다. 손을 놓으면 더 빨리 달려갈 수 있을 텐데도 내 손을 꼭 잡은 채 더딘 나의 속도에 맞춰 걸어주고 있는 그가 내 곁에 있기 때문이다. 나를 위해주는 그의 마음이 너무 깊어 그것이 오히려 더 슬프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눈이 부시다. 나를 감싸주는 그의 사랑의 온기가 너무 찬란하여 그 사람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사랑이 너무 눈부셔서 길을 잃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괜찮다. 그와 함께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