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가 수족이 되어버린 시대니 다들 네트워크에 자신을 하나쯤은 복제해 두고 있다. 남녀노소 할 것 없다. 어디를 가건 사진을 찍고 그것을 업로드하여 SNS를 꾸미기에 바쁘다. 네트워크와 휴대전화를 벗어나서는 살 수 없는 시대에 이르러 있으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일시적 흐름이 아니기도 하고 가상공간 속 SNS 활동이 현실에까지 개입하고 있으니 이 흐름에 적응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런데 느리디 느린 나는 어쩐지 전쟁 같은 이 흐름에 적응이 잘 안 된다.
실물 자료가 없으면 정보 확인조차 불가능하던 시대에 비하면 클릭 한 번으로 많은 것이 해결되는 이 시대는 천국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이 급하게 필요한 경우 전자책을 내려받아 활용하면 되고 궁금한 것이나 확인해야 할 내용이 있으면 검색기의 힘을 빌리며 되니 과학의 발전이 편리함의 제국을 만들어 놓았음은 부정할 수 없다. 문제는 정보에의 접근이 용이해지면서 상식 수준의 정보를 찾기는 쉬워졌는데 그 진위를 가리기는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는 데 있다.
얼마 전 지인과의 대화에서 챗GPT에 자신의 학위 논문과 관련된 검색어를 입력해 보았더니 논문과 거의 흡사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학생들에게서도 챗GPT를 이용해 과제 초안을 만들고 적당히 수정해서 제출한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었다. 한 번은 한 저서에 관한 지인의 질문을 하여 대답해 준 적이 있는데 시간이 지나 챗GPT로 확인한 대답과 나의 대답에 차이가 있다며 되물어 와 다시 말해 준 적도 있었다. 그 모든 과정에서 나는 왜인지 그간 공들여 구축해 온 성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은 패배감을 느꼈다.
검색어를 넣고 클릭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일 초도 채 안 된다. 바뀐 화면은 몇 년간 머리를 싸매가며 쌓아두었던 내 머릿속 정보를 구토하듯 쏟아낸다. 모니터를 채운 화려한 지식은 정성 들여 만들어 둔 수년의 노력을 순식간에 압도해 버린다. 그 순간 내가 느끼는 것은 형언할 수 없는 무기력감이다. 시작도 해 보지 않은 싸움에서 져 버린 것 같은 열패감을 마주하며 나는 묻곤 한다. 이러한 시대에 과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지금과 같이 정교함이 더해지기 전까지는 학생들에게 검색한 정보를 활용할 때는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보거나 그게 아니라면 전자책이라도 찾아 확인하는 과정을 가져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하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말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거의 정확하다는 것이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지식의 축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지루한 확인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을까 하는 회의를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흔들림이 인문학이라는 답이 없는 학문을 붙들고 있는 나를 허탈하게 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한동안 종이와 문자로 만들어진 세계를 멀리하며 종이책을 매만질 때의 까슬까슬한 느낌과 잉크와 종이가 만나 빚어내는 냄새가 내 중심을 벗어나 있게 만들어 버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진정성을 가지고 마주해 온 일이 무용하게 되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게 어쩐지 이 세계에서의 나의 지표 같았다. 세상으로부터 지워지고 있다, 지워져 갈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은 절망을 넘어선 공포가 되어 내게 안겼다.
꽤 긴 시간 진지하게 온 마음을 다하여 해 온 일이 폐기 처분되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함을 마주하는 일은 녹록하지가 않았다.
앞이 보이지 않았기에 모니터를 앞에 두고 팔짱을 끼고 앉아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그런 내 앞에서 모니터는 빛을 뿜어내며 쉼없이 검은 정보를 쏟아냈다. 범람하는 강물이 되어 소용돌이치는 정체 모를 검은 문자들과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내가 보였다.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나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자니 문득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검은 물에서 나를 꺼내줄 수 있는 사람은 나 외에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컴퓨터를 껐다. 그런 다음 노트와 펜 책과 포스트잇을 집어 들었다. 책을 펴고 그 사이에 코를 댔다. 뭉근한 잉크 냄새가 코로 밀려 들어왔다. 홍수에 떠밀려 내려가는 듯했던 아찔함과 눈앞이 아득해지던 막막함이 만들어낸 현기증이 아주 천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생각했다. 종이와 잉크만이 전해줄 수 있는 느린 고독과 사색의 힘이 나를 지켜내 온 힘이었다고. 그 힘이 이번에도 표류하고 있는 나의 손을 꼭 잡아주고 있다고. 허니 내가 지켜온 그것들은 앞으로도 결코 무용하지 않을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