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구에 대해 생각한다. 도구의 생명은 유용함이다. 유용함을 인정받지 못한 도구는 버려지거나 양도된다. 도구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말이다. 한평생 유용함을 인정받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는데 그 끝이 버려짐이라는 사실은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유용함을 인정받고 그것을 극대화하여 보여주는 것이 도구의 태생적 숙명이라 해도 더는 쓸모없게 되었다는 선언을 듣는 것은 여하간 반겨할 일은 아니다.
유용성을 번번이 업그레이드한다고 하여 영구히 버려지지 않느냐면 그건 또 아니다. 세상에 도구는 수없이 많고 그 도구를 어떤 용도로 어떻게 사용할지는 사람마다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는 한편 취미로 도구를 수집했다가 흥미가 사라지면 내다 버리거나 헐값에 파는 사람들까지 있으니 도구로 선정되었다고 해서 좋아할 일만은 아닐 수도 있다. 도구로 선정되었음에도 그 유용함을 한 번도 보여주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데도 여하간 도구로 살아남기 위한 첫 여정은 도구임을 증명해 보이는 길이다. 채택조차 되지 않으면 그 도구는 어디에도 쓰일 수 없는 사물이 되고 마니 말이다. 굳이 쓰임이 필요하지 않다면 스스로가 도구임을 증명하며 살벌하고 치열한 유용함의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모두가 도구로 채택되어 팔려 가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 얼마나 되는 도구가 꼿꼿하게 당신들의 판단이 틀렸다며, 도구는 본래 유용함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며 목소리를 높일 수 있을까?
도구는 사물이다. 사물이라고만 규정하기에는 인간에게는 복잡한 부분이 있다. 그리고 사고하는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유동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는 것은 인간은 채택되기를 기다리는 도구와 달라야 하고 또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인간이 도구가 되는 순간을 우리는 자주 경험하게 된다. 아니, 유용한 도구가 되기 위해 자신을 포장해 가는 사람들을 너무도 자주 접하게 된다. 포장이 잘 되면 잘 될수록 자부심을 가지는 아이러니한 이 구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나는 다만 나의 원칙을 따라 뭔가를 하고 있었을 뿐인데 내가 누군가의 인생 또는 상황, 단체를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음을 문득 인지하게 될 때가 있다. 여하간 채택됨이 기분 나쁜 일은 아니었으므로 도구로 채택되었을 때의 나는 내 능력이 뛰어나서 인정받게 된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개인적인 것이 되었건 단체를 위한 것이 되었건 그들의 필요에 따라 나의 유용함을 활용하는 상황에 나를 배치해 둔 것일 수 있는 것을 나는 드디어 나의 능력을 펼쳐 보일 수 있는 판을 만난 것으로 인식하였다. 그러하기에 온 마음을 다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역량을 펼쳐 보였다. 그렇게 마음을 다해 진정성 있게 일하면 내가 다음의 나로 업그레이드 될 것이라고 믿었던 것도 같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도구로 지명되는 순간부터 바빠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바빠지는 것에서 일종의 성취감도 느낀다. 바쁨에 비례하여 나의 업적도 더해지고 있다는 착각 때문이다. 그런데 맹목적으로 바쁘기만 한 것은 어제의 나로부터 내일의 발전된 나로 나아가는 데 있어 어떤 역할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나는 나를 불러주는 사람이 많아지고 나에게 주어지는 일이 많아지는 것이 나의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살았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내가 누군가 또는 어떤 상황을 위한 유용한 도구였다는 것을 알아챈 순간 내가 느낀 것은 절망과 안도였다. 절망은 누군가가 나를 도구로 밖에 인식하지 못할 만큼 내가 나태하게 살았던가 하는 데서 온 것이었고 안도는 도구화되는 것으로 인해 받아야 했던 무의식적 강박과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게 된 데서 온 것이었다. 이제 너는 내가 원하는 도구가 아니야 라는 선언을 들은 순간 내가 느낀 배신감과 황당함은 신기하게도 이내 편안함으로 이어졌다. 한편으로는 도구화되는 데 길듦으로 인해 잃게 된 야성성이 되살아났기 때문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도구가 되기를 받아들인 순간 버려짐 또한 수긍한 것이라는 사실을 뒤집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로써 도구로서의 삶이 아닌 주인으로서의 삶을 다시금 마주해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서는 사실 일종의 희망도 느꼈었다. 세상이 무너진 듯 막막하고 두려웠지만 말이다.
도구로만 사용되어 온 사람은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보는 것이 응당 당연한 것이 되어 있다. 채택되고 버려지는 삶에 길들어 유용성이 아닌 시각으로 누군가를 볼 수 있는 눈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도구로 채택되는 데 길들면 나 또한 그러한 세상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그 세상은 나의 유용함이 날이 서 있을 때까지는 나의 유용함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으므로 나에게는 천국일 수밖에 없다. 허나, 상상 못 할 새로운 기능을 갖춘 여러 도구의 탄생 앞에서 언제까지고 나의 유용성이 언제까지 통용되리라고는 장담할 수 있을까?
사람을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그 사람을 버리게 된다. 애석하게도 그 자신 또한 버려졌고 앞으로 또 버려진 누군가가 되어 있고 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 자신은 알지 못하고 있다. 이 서글픈 아이러니 속에서 우리는 오늘도 유용한 도구가 되기 위해 타인을 밟고 일어서려고 하고 유용함을 보여주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음에도 나에게 기회가 오지 않음에 분노하며 다른 누구보다 나의 유용함이 두드러져 보이게 하려 노심초사한다. 과연 그러할 필요가 있는 걸까? 그깟 도구가 되기 위해서 말이다.
무엇이 되었건 자신만의 세상을 구축해 보려 한 사람은 그게 실패가 되었건 성공이 되었건 적어도 너무도 간단히 누군가를 도구로 사용하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도구로만 살아온 사람에게는 그게 당연한 것이 되어 있다. 그 자신이 도구가 되는 것도 타인을 도구로 사용하는 것도 전부 상처로 남겨지고 있음에도 도구의 유용함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도구화는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일까?
노트북을 두드린다. 참 유용한 도구다, 노트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