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때로 상황이 그 자체가 말이 되어 새겨지기도 한다. 듣고자 하는 말을 상대에게서 직접 들을 수 없으니 상황을 상대로 말을 걸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상황은 상황인 채로 있는데 사랑으로 인해 균형을 잃은 시선은 그 속에서도 어떤 한 지점에만 주목하게 한다. 그리하여 A라는 상황은 A가 되었다가 a가 되기도 하며 Aa로 확장되어 나가기도 한다.
냉정을 유지하면 좋겠지만 사랑에 눈이 멀어버리면 그게 안 된다. 상대의 마음을 알고 싶은 마음 그 자체에만 매몰되어 상황을 직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려움이나 불안을 느끼게 하는 상황에 둘러싸여 있을수록 냉정하고 차분하게 상황을 분석해야 감정에서 거품을 걷어내고 괜한 의심과 불안으로 인한 소진을 줄일 수 있는데 사랑은 그러한 힘이 작동하지 못하게 한다. 그리하여 머리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설명할 수 없는 폭발적인 에너지에 휘둘려버리고 말게 된다. 이성적이고 침착하게 사랑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을 대면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누군가를 지향하는 힘은 형체도 중심도 없이 다만 크기만 있어 아무리 노력해도 한쪽으로만 기울어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상대가 나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A라는 상황이 발생하였고 그 상황의 해결은 B라는 사람만이 해 줄 수 있다. 그런데 B와는 연락이 닿지 않는다. 그리하여 사랑에 빠진 나는 A라는 상황에 매몰되게 된다. 그리하여 사람이 아닌 상황과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 과정에서 A라는 상황 속 B는 여러 다양한 캐릭터로 재탄생한다. 생각에는 생각을 증폭하는 힘이 있어 한 번 시작된 B 만들기 놀이는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나는 괴로움을 끌어안고 울었다 그치기를 반복하게 된다.
B와 C는 사랑을 한다. 사랑하는 마음만 보기에도 모자란 시간인데 둘 사이에는 번번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한다. 그 상황을 해석하는 B와 C의 시선은 각각 다르다. B에게서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 C에게서는 세상 큰일이 되어 있는가 하면 그 반대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오해가 생기고 서운함이 일어나며 그리하여 세상이 무너질 듯한 충격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인간에게는 괴로움을 벗어나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 그러하기에 인간은 괴로움에 직면할 때면 나를 괴롭게 하는 상황을 서둘러 빨리 없애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상대의 입장이나 전체적인 상황보다는 나의 감정에만 몰입하게 된다. 그리하여 꺼내지 말았어야 할 말을 섣불리 상대에게 전해 상대를 힘들게 하기도 하며 그로 인해 나의 괴로움을 자처하게 되기도 한다. 그 모든 기작을 아는데도 스스로 괴로움을 자처하게 되는 것은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사랑이 원래 그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하기에 사랑에 빠진 남녀는 사랑에 있어서 만큼은 백전백패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사랑을 하는 것은 그게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괴로움과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을 전해주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