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

사색

by GZ

십 층을 누르고 눈을 감는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오싹함이 전신을 쓸고 간다. 오금이 저린다. 손발에 쥐가 나더니 심장이 찌릿해져 온다. 발밑이 언제 사라져 버릴지 모른다는 불안, 고소공포증은 높은 곳에 이르기 전 마주해야 하는 내 고질병이다.

층이 더해진 만큼 커지는 불안이 평정을 무너뜨린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에 대한 불신, 중력에 반하는 힘이 언제 끊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중력권에 있는 모든 것은 땅에 닿아 있어야 하는 자연 질서로부터의 이탈. 땅에서 멀어진 만큼 감정의 동요도 커진다.

일주일에 두 번, 스페인어 수업을 들으러 갈 때마다 곡예하듯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린다. 높은 데만 가면 진땀을 빼게 만드는 불가해한 공포 때문이다.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몇 년간 머릿속을 맴돌던 화두를 곱씹으며 십 층을 복도를 밟는다. 감은 눈을 치뜨며 길게 숨을 뱉는다. 고지에 오른 것을 과연 성공이라 단언할 수 있을까. 날숨에 실려 온 질문이 뇌리를 지나간다. 복도 끝 창밖을 응시하며 생각한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존재할 뿐, 그 속에 높낮이는 없다고. 고저로 공간을 구획한 건 인간이었다고.

자연에 상하(上下) 질서는 없다. 층위는 입체의 세상을 평면으로 옮겨오고자 한 인간의 오만이다. 잘나고 못남, 더하고 덜함 역시 사람이 만든 작위(作爲)이다. 우주선 같은 고층건물에 올라 땅을 내려다보는 교만. 타인을 제물 삼아 허깨비 같은 정상을 향해가는 어리석음. 명예와 권위 쫓기에 혈안이 된 미욱함. 그 서열화에 순응하라는 세상에 멀미를 느낀다. 명문, 직위, 등급, 빈부, 계층. 누가 이 둥근 세상을 모나게 만든 걸까. 시도도 하지 않아 지레 겁부터 집어먹도록, 사람에게 번호를 매겨 놓은 게 대체 누굴까.

높이 올라가야 한다는 강박과 성공에 대한 비틀어진 관념이 발을 부추긴다. 빠르게 걸으며 더 많은 정수리를 내려다보고서야 자신의 위치를 안심하게 되는 경쟁 구도에 갇힌 사람들을 본다. 타인을 제물 삼아 삶의 공포를 몰아내려는 이기심이 그림자가 되어 그들을 뒤쫓고 있다. 숨이 턱에 차오르도록 달리고 있는데도 부족한 것 같고, 뛰어도 뛰어도 뒤처지는 것만 같고, 변두리로 내쳐지는 것 같이 느끼고 있으리라. 고도가 높아질수록 다리가 후들거리고 가슴이 갑갑해지는 고소공포증처럼 목표한 지점에 근접할수록 불안도 더해진다. 서열화된 성공에 대한 강박 때문이다.

동그란 지구에 위아래는 없다. 경도도 위도도 무한 개념으로 보면 모두 직선 위에 있다. 지상의 인간은 양팔을 뻗을 수 있을 만큼의 공간을 자신의 몫으로 가진다. 서양에서 말하는 퍼스널 스페이스(personal space)다. 그곳은 세월의 나이테가 더해져 풍성해져야지 등급이 매겨지거나 단계화되어서는 안 되는 절대 영역이다. 너와 나 그리고 이 세계는 수치로 일반화할 수 있는 천편일률적인 곳이 아니라 역동적인 계(界)이다. 세상은, 그리고 존재는 끊임없이 유동한다. 과유(過猶), 고저(高低), 상하(上下)에 맞춘 일률적 근거가 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고층건물을 오를 때마다 생각한다.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어디까지 가야 할까, 정상에 놓여 있는 건 고독일까, 행복일까 아니면 무(無) 일까 하고. 정상이라 불리는 지점을 앞두고 중용을 지킨 현자들을 어리석다 단정할 수 없을 터. 타인의 삶과 내 인생을 섣불리 비교 평가하는 것 또한 나약함의 발로일 것이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내게 십 층은 고지가 아무렇지 않은 누군가의 백 층과는 애초부터 달랐다. 개인의 삶의 정점은 내가 아닌 그 누구도 정해줄 수 없다. 높지도 낮지도 않다는 십 층, 손발에 피가 통하지 않는 듯한 이 느낌이 두려움이 만들어내는 착각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교실에 들어서며 질문을 던진다. 어디까지 올라가 볼 텐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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