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라는 온기
잠든 조카를 내려다보며 어머니를 생각한다. 나 역시 이렇게 당신 품에 안겨 컸으리라. 내가 어머니라는 짐을 지운 순간부터 당신은 한시도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으리라. 부모 됨으로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두 발 짐승의 일거수일투족을 보살피기로 한 어미의 마음을 가늠해본다. 숨쉬기, 눈 맞추기, 배설하기, 소리 내기, 뒤집기. 배울 게 한가득 인 아이에게 먹고 자는 게 네가 해야 할 일의 전부라고 하는 할미. 이 작은 생명을 먹이고 재우기 위해 밤을 지새우고 쪽잠을 자고 끼니를 거르는 데도 당신 입가에는 웃음이 가시지 않는다. 아이의 성장은 나날이 달라지고 할머니의 보살핌은 그만큼 묻혀만 가고. 잠든 순간 조차 손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내리사랑에는 계산이 없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어깨를 펴고 생을 방사하는 계절. 동생이 결혼을 하고 새 생명이 태어나면서 우리 집에도 이윽고 봄이 찾아왔다. 갈등과 시련, 아픔과 고난으로 뿌옇게 물들었던 지붕 아래에 소생의 계절이 들었다. 네 발로 걷던 생명이 두 발로 걷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엔가부터는 속도를 높여 뛰기 시작했다. 푸른 들판이 더없이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는 계절이었다.
회색 건물에 둘러싸인 아이의 부모와 손자를 품에 안은 내 부모와 그들을 품은 푸른 들. 살아있는 모든 것이 생동하는 봄, 초록을 좋아하는 아이를 데리고 동산을 찾는다. 벚나무 그늘 밑에 돗자리를 깔고 짐을 푼 후 아기를 내려놓는다. 봄에 둘러싸여서일까. 들판이 드넓은 품을 조건 없이 내줘서일까. 달리고 소리치고 까르륵 웃고. 어떤 인위도 없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에 둘러싸인 아기가 엉덩이를 들썩인다. 조그만 입술이 어른들의 귀에 대고 콧노래를 부르며 봄이 왔음을 전해온다.
갓 태어난 새 생명과 조부모가 된 어미 아비와 그들을 품은 푸른 들. 티끌 한 점 없이 파랗고 하얀 풍경 위로 광화문 광장을 가득 채웠다는 유모차 부대를 꺼내본다. 하늘거리는 꽃잎이 마음 놓고 숨 쉬고 싶다던 그들의 외침을 불러온다. 숨 쉬는 것을 불안해할 날을 맞으리라는 상상을 해 본 적이 있었던가. 지리산 깊은 산골에 산소 캔을 제조하는 공장이 들어섰다는 소식을 뉴스로 듣게 될 줄 알았던가.
탁한 공기에 둘러싸인 어미들이 청정한 공기를 위해 거리로 나서게 된 현실을 비극이라 해야 할지 희극이라 해야 할지. 이대로는 못 살겠다고, 방편을 마련해 달라고. 매일 같이 미세먼지 농도를 점검하고 창문을 닫고 마스크를 끼고 살아야 하는 회색 도시를 맑혀 달라는 그들의 외침은 간절했다. 교통량을 통제하고 카풀을 권장하고 일회용품 사용을 규제하고. 뒤늦은 방책은 먼지를 걷어내지 못했다. 막이 되어 내려앉은 뿌연 커튼에 무슨 방책이 있을까.
어떤 대책을 내세우건 임시방편일 뿐 투명한 하늘을 보기까지 갈 길은 멀다. 매일 같이 올라가는 새 건물과 늘어가는 차와 깊어지는 지하로. 인간의 편의를 위해 폐부까지 다 내준 자연은 지금, 질식 중이다. 내 어머니와 그 어머니의 어머니와 그 위의 수많은 어미들을 품어주었던 가장 큰 어머니인 자연은 우리네 어미가 그랬듯 제 몸을 내줘가며 어리석은 자식들을 위한 터전을 만들어주고 있다.
먼지 낀 하늘과 녹조 바다와 무너지는 산을 보기 전, 어미의 아픔을 헤아려 본 적이 있었던가. 숨조차 마음 놓고 쉴 수 없게 된 탁한 하늘을 마주하기 전, 어미의 속앓이를 생각해 본 적 있었던가. 땅이 꺼지고 하늘이 탁해지고 바다가 검어져 내가 발 디딘 이곳에서 불편함을 느끼고서야 우리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인 자연으로 고개를 돌렸다. 왜 안온한 안식처를 주지 않느냐고, 왜 인간을 내치느냐고, 내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목에 핏대를 세운 채.
있는 그대로의 자연은 인간을 외면하지 않는다. 물길을 막고 산을 허물고 건물을 쌓아 올리고. 이토록 복잡한 길을 만든 건 인간이다. 물을 사 먹고 창문을 닫아두고 냉방기로 온도를 조절하게 된 오늘은 인간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비난의 화살은 자연이 아닌, 우리 자신에게로 돌려야 한다.
저기 아이가 푸른 들판을 뛰논다. 파란 동산 위의 아이 얼굴이 더없이 맑다. 본래의 자연을 회복하는 일은 저 아이의 미소를 지키는 것과 닿아있으리라. 어미는 자식을 내치는 법이 없다. 자식을 외면하는 어미는 어미가 아니다. 자연은 인간의 어미다. 상처 많은 그 품에 바야흐로 우리 손을 덧대주어야 할 때이다.